2012년 어느 날,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에 낯선 외국인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의료기기 사업을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한 뒤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데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다. GE, 필립스 등 글로벌 강자에 밀려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에서 유통채널조차 구축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들 외국인은 몇 달간 치밀한 조사와 인터뷰, 미국 현지 조사 등을 거쳐 의료기기 유통채널 확보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3년 2분기 만들어진 ‘미국 채널 전략’이다. 이 전략을 만든 팀은 삼성의 ‘외국인 비밀부대’ 글로벌스트래티지그룹(GSG)이다.
삼성 외국인 비밀부대, 100인의 'GSG'
GSG는 이른바 ‘인하우스 컨설팅펌’이다. 그룹 내 주요 사업에 대해 독립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주업무다. 18개국 출신 100여명의 전문가들은 모두 하버드, 와튼, 듀크, 컬럼비아, 시카고, 버클리 등 세계 일류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외국어만 19개. 평균 경력은 6년이지만 평균 나이는 만 30세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젊고 똑똑한’ 인재들이다.

GSG는 1997년 ‘미래전략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에겐 신선한 시각으로 최신 정보·트렌드를 알려주는 수준 높은 외국인 인재가 필요하다. 그들을 끌어모아 사업을 돕게 하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리더로 키우자”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던 삼성 입장에선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인재가 절실했다.

처음엔 ‘외국인 조언 그룹’ 정도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삼성이 급성장하면서 GSG도 그에 걸맞게 변신해 갔다. 2006년부턴 세계 일류 MBA 출신들만 뽑았고, 주요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본격적으로 맡았다. 2011년부턴 전자 외 계열사로도 컨설팅 업무를 확대했다.

삼성이 이들에게 주는 혜택은 파격적이다. 연봉 체계 자체가 일반 직원들과는 다르다. 삼성 관계자는 “세계 일류 컨설팅 업체의 급여 수준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고 설명했다. 집과 가족 의료보험, 자녀들의 국제학교 학비도 지원한다. 휴가 때는 가족 모두가 본국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제반 경비 일체를 준다.

업무는 철저히 전문성에 따라 배분된다. 삼성전자에 소속돼 있지만 사실상 독립조직이어서 어느 사업부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다.

이들이 일궈낸 성과도 상당하다. 2011년엔 스마트폰 열풍에 발맞춰 그룹 전체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기업들과 공동 마케팅을 시작하도록 조언한 것도 GSG다. 삼성SDI가 현재 세계 자동차용 2차전지 1위에 오른 것도 GSG의 컨설팅을 받은 덕이 크다는 전언이다.

GSG는 글로벌 핵심 인력을 키우는 ‘외국인 삼성 사관학교’로도 꼽힌다. 수년간의 컨설팅을 통해 삼성을 자세히 알게 된 이들이 본국에 돌아가 삼성의 글로벌 사업을 이끄는 고위 임원이 되는 것.

삼성 관계자는 “GSG는 이 회장이 삼성에 풀어놓은 ‘메기’ 같은 존재”라며 “참신한 시각과 전문적인 경영학 지식으로 이들은 사업부 전체 임직원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윤선/김현석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