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 라이프] 채은미, 말단 콜센터 직원서 최초 한국인 女 지사장으로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52·사진)의 하루는 새벽 5시반부터 시작된다.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해 각종 국·영문 일간지를 꼼꼼히 읽고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학원에서 한 시간가량 회화와 작문 공부를 하고 난 뒤 오전 8시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는 이런 일상을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결이요? 어쩌다 보니 습관이 되더라고요.” 채 지사장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이어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크게 웃으며 답했다. 그는 “아무리 외국계 회사에서 오래 일했다 해도 원어민이 아닌 이상 영어 실력에 늘 한계를 느낀다”며 “매일 꾸준히 공부해야 녹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채 지사장은 ‘국내 특송물류 업계의 왕언니’로 통한다. 8년째 페덱스코리아 수장을 맡고 있는 그는 남성적이고 거친 이미지의 물류업계에서 여풍(女風)을 주도하고 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한 채 지사장은 1985년 항공특송업체 플라잉타이거 한국지사에 입사했다가 1989년 회사가 페덱스에 합병되면서 ‘페덱스의 여인’이 됐다. 페덱스에서 맨 처음 맡은 일은 고객관리부 콜센터 업무였다. 그는 끈기와 섬세한 업무처리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2년 뒤인 1991년 28세 나이에 고객관리부장으로 승진했다. 페덱스코리아 사상 최연소 부장 승진 기록이었다. 2004년엔 한국인 최초로 페덱스 북태평양지역 인사부 상무로 임명된 데 이어 2006년엔 페덱스코리아 지사장이 됐다.

직원들과의 스스럼없는 소통도 강점이다. 어느 직급의 사원이든 원할 때 드나들 수 있도록 그의 사무실엔 출입문이 없다. 841명 직원 모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건 물론이다. 채 지사장은 “직원들이 동기 부여를 확실히 하고 협업 정신을 기르도록 하는 게 경영 성과를 내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작 채 지사장을 힘들게 한 것은 회사 업무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편견이었다. 그는 “외부에서 여성이라고 낮춰보는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다”고 말했다. 고객관리부장 시절엔 전화를 받으면 “여긴 부장이 여자냐. 당장 남자 바꿔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또 “여자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냐”는 비아냥도 참아내야 했다.

결혼 후 회사 일과 가정 생활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채 지사장은 “회사에선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했고, 집에선 아내이자 외아들의 엄마로서 저녁 7시께 퇴근하면 조금이라도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채 지사장 부임 후 페덱스코리아의 규모는 종전보다 훨씬 커졌다. 국내 지역사무소는 9개에서 19개로, 보유 화물차량은 189대에서 318대로 급증했다.

그는 “수출입 물량이 많은 데다 해외 직접구매 수요가 증가하면서 항공특송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도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