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바마 방한, 韓美동맹 더 다질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한국과 필리핀을 거쳐 말레이시아에서 마무리하는 아시아 순방을 시작했다. 이번 방문은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전략인 ‘재균형전략(rebalancing)’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이 전략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이라는 용어로 설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심축 이동’은 미국이 유럽과 중동을 버리고 아시아로 전략의 축을 옮긴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아시아 지역이 갖는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 외교 전략에서 드러난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재균형전략’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오바마 대통령 방한 시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 미국의 재균형전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전략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한국은 한·미 동맹을 21세기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과 어떻게 공동보조를 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21세기형으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은 그 자체로서는 기념비적 문건이었다. 문제는 그 후 1년 가까이 두 정상 간의 합의사항을 구체화할 수 있는 후속 조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양상은 미국의 재균형전략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적극 추진하면서 ‘정상국가’로 받돋움하려는 아베 정권과 대비된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미국의 패권질서 아래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또 다른 국운 융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평화통일의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아시아 지역에서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고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재균형전략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된다. 미국의 패권질서는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적 방식의 과거 일제와 청나라, 소련과 같은 ‘패도적 패권(覇道的 覇權)’과 다르다. 미국의 패권질서는 영토적 야욕이 없고 상대 국가와의 타협과 합의를 중시하는 ‘왕도적 패권(王道的 覇權)’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의 전략가들은 이런 미국 패권의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미국의 새로운 재균형전략에 적극 호응하면서 창의적 국가전략을 갖고 오바마 방한에 임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방한 시 한·미 정상 간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돼야 한다. 북핵 문제는 최근 북한의 제4차 핵 실험 가능성과 함께 또 다른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무작정 기대고,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 의지가 없어 보이는 중국을 쳐다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전략을 제창하고 있지만 북한 핵 실험조차 막지 못할 경우 이 전략은 미·소 냉전 당시의 구형대국관계(舊型大國關係)와 비교해서 한국의 국익에 더 나을 것도 없다. 국제사회가 북한 제재를 위해 앞문을 틀어막으면 뒷문을 열어두고 대북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의 책임도 이번 회담에서 분명히 짚어야 한다. 또 박근혜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재구축하는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국력의 한계를 한·미 동맹을 통해 보완하고 극복하면서 미국이라는 패권국가, 즉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상호협력을 통해 오늘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한·미 동맹을 21세기형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김영호 <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youngho@sungsh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