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기업은 공기와 같다. 평소엔 느낄 수 없지만 기업이 없다면 세상이 멈춘다. 아마존 정글에 사는 사람들마저 나이키 티셔츠를 입는 세상이다. 2009년에 기업은 세계 인구의 81%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세계 경제력의 90%를 형성했으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4%를 창출했다. 세계 10대 기업의 총 매출을 합치면 하위 100개국의 GDP를 합친 것보다 많다.

[책마을] 정치? 종교? 과학?…인류 역사 바꾼 건 '기업'이었다
《기업의 시대》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업의 탄생과 발전, 성공한 기업의 비결, 기업의 미래 등 기업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 경제교양서다.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 제작팀이 기업가와 경제학자 등 123명을 인터뷰하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3대륙을 돌며 기업에 관한 역사자료와 유적을 찾아 제작한 10부작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었다.

기업의 역사는 고대 로마부터 시작됐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이익 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간다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장웨이잉 베이징대 광화경영대학원장은 “개인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시장성을 갖춰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기업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이후 사람들은 수많은 기업과 상인들이 시장에 뛰어들면 사회 전체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 믿었다. 중상주의 시대에 국가가 장악했던 기업이 시장으로 돌아가면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가격이 생산을 촉진한다는 주장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요, 그게 시장경제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기업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기업이 항상 승승장구하고 모두 천사인 것은 아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20세기 초의 사람들은 사회경제 질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의 탐욕과 빈곤층의 폭력이 국가와 사회를 위협했다. 대공황으로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기업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는 이들이 나왔다. 이때 ‘보이는 손’인 정부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고 기업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듀폰은 미국 기업 중 최초로 시간 외 수당과 야근 수당을 지급했으며, 처음으로 직원을 위한 저축계좌를 개설했다. 직원들이 100달러를 예금하면 연말에 기업이 6%의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직원들을 위한 일이었다.”(167쪽)

기업은 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혁신과 연구개발을 토대로 한 기업의 확장은 세계화의 한 축이면서 기업에 여전히 큰 과제다. 다국적 기업은 ‘글로벌화’와 ‘현지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현지 문화와 충돌하지 않는 것은 기업들에는 상식이 됐다.

거대 기업의 기적을 탄생시킨 주역은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이라고 책은 말한다. 자기 힘으로 운명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는 남다른 안목이 동시에 발휘될 때 기업가정신이 탄생한다는 것. 199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를 개척하고 포착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가는 인류 역사에서 정치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국제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브랜드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글로벌화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설명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는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공 이익, 사회적 이익과 관련해 기업과 소비자가 각자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현대 기업의 새로운 역할을 주문했다. 책은 또한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강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국가의 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한 권의 책에 기업에 관한 모든 것을 담으려다 보니 깊이가 부족해 보이지만 기업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며 교양의 폭을 넓히기에는 손색이 없다. 좀 더 깊이 있게 기업의 역사를 다룬 책이 국내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