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기업의 과실 여부나 인과 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더라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 법안이 23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특히 산업계의 요구로 환경부가 수용했던 ‘적법 운영 시 인과 관계 추정을 배제한다’는 조항마저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삭제돼 기업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환경오염 피해 배상 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안(환구법)’을 가결했다.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의 설치·운영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한 경우 과실 여부를 불문하고 해당 시설의 사업자가 피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환경오염 피해와 해당 기업 간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상당한 개연성’만 있으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배상 한도는 2000억원으로 제한하되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무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이를 위해 환경 오염 위험이 높은 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은 앞으로 환경 책임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시설을 아예 설치·운영할 수 없다. 아울러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보험금 청구일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하거나 예비조사 후 지급 요건에 해당하면 일부 금액을 미리 줄 수 있도록 했다.

당초 환경부는 기업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산업계 우려를 받아들여 해당 사업장이 적법하게 시설을 운영할 경우 (개연성만으로) 인과 관계를 추정하는 행위를 배제키로 하고 환노위 법안소위 심사까지 마쳤으나 이날 전체회의에서 결국 수용되지 못했다.

실제 환노위 위원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 조항이 들어가면 ‘피해자 구제법’이 아닌 ‘기업 구제법’이 된다”며 삭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여야 간 협의 끝에 심 의원 의견이 관철됐다.

법안을 최초 발의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조항이 들어가면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사례에서 기업이 면책을 주장할 수 있다는 법적 검토 의견이 나왔다”며 “대신 법에 따라 신설되는 환경심의위원회에서 기업이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대한상공회의소와 환경부에서도 양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화학업체 관계자는 “상당한 개연성이라는 모호한 이유만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면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측은 “지난해부터 환경부와 업계 대표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환구법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충분히 논의해 정치권에 전달했는데 지난주 환노위 소위 법안보다 더 강한 내용으로 전체회의를 통과해 당혹스럽다”며 “업계 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환구법이 환노위 안대로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생존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호기/박해영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