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택산업은 광주광역시 운암동에서 붕괴위험 판정을 받은 3층 건물을 헐고 새 상업·업무용 빌딩을 건립하기 위한 건축허가를 3년째 광주 북구청에 요청 중이다. 이 회사는 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해 작년 11월 승소했지만 구청은 또다시 항소를 제기한 상태. 구청은 새 건물에 입점 예정인 대형마트에 대해 일부 주민이 반대한다는 점을 공사 불허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주택 관계자는 “대형마트 영업허가와 건축허가는 별개인데도 공사를 불허하는 바람에 수십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암덩어리로 규정하고 각종 규제 철폐에 나서고 있지만 건설·부동산 인허가 현장에선 ‘유권해석’ ‘지침’ 등을 활용한 ‘그림자 규제’가 여전하다.

[이런 규제 없애라] 유권해석…지침…건설시장 질식시키는 지자체 '그림자 규제'

○행정소송·심판도 안 통해

서울행정심판위원회에 접수된 서울지역 건설 관련 행정심판 건수는 지난해에만 439건에 달했다. 전년도에 비해 10% 늘었다. 최근 4년간 매년 400건을 넘었다. 건설 관련 행정소송도 크게 늘어나 2012년 전국적으로 910건에 달했다. 전년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최근 각종 사업 인허가 때 민원 해결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어진 점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에 나올 작년 건설 관련 행정소송 건수도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선 행정소송 및 심판 결과도 번번이 무시된다고 건설업체들은 지적한다. 2012년 부산 기장군 기장읍에서 아파트 건축허가를 거부당한 중견 건설업체 A사는 행정심판을 제기해 ‘신청이 관계 법규에 위배되지 않는데 막연한 이유로 허가를 거부한 것은 적법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행정심판위 결정을 받았다.

기장군은 그러나 각종 민원을 이유로 공사를 불허했고 회사는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건설사들은 이 같은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행정소송 등을 내 공무원 눈 밖에 나면 다음에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억울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요건을 갖춰 인허가를 신청해도 소요 기간을 예측할 수 없는 점도 문제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택사업을 하려면 17개 소관 부처의 82개 관련 법령상 인허가와 20~25개 관련기관·부서협의를 거쳐야 한다. 조금이라도 모호한 규정은 유권해석이나 지침으로 넘겨져 불투명성을 키운다.

○위원회는 또 다른 규제기관

각종 위원회는 허가 과정을 복잡하게 하고 로비 대상을 늘린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상업시설 인허가를 받으려면 도시계획위원회 건축위원회 등 최대 7개의 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지난해 경관법 개정으로 연면적 3만㎡ 이상 주택개발에는 도시경관 및 디자인 심의위원회도 추가됐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위원회 상당수는 ‘부실 덩어리’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부동산개발시행사 관계자는 “특정 교수가 10년 이상 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 그 지역에서 사업을 하려면 해당 교수를 공략하면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며 “위원회에 전문가는 한두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리만 채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인허가에 리스크와 부동산경기 침체가 맞물리며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은 크게 위축됐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91조원이었던 국내 민간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55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엔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을 막기 위해 개발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운영됐다”며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들어선 지금 부동산 규제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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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김동현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