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9명이 나가는 부서도 있다며?”

“완전히 업무 마비야, 마비.”

서울 광화문 KT 사옥.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직원들이 하나둘 명예퇴직 얘기를 꺼내며 한숨을 쉰다. 예상보다 퇴직 규모가 크다는 게 화제였다. 명예퇴직자를 골라내는 과정에서 회사 분위기가 망가져 버렸다는 푸념도 나왔다.

'명퇴' 몸살 앓는 KT…全직원 4분의 1 신청
KT가 명예퇴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가피한 구조조정, 그러나 막상 닥치자 내부 동요가 심하다. KT는 지난 8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정했다. 전체 직원 3만2000여명 가운데 1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2만3000여명. 70%가량의 직원을 명예퇴직 대상에 올린 것이다. KT의 명예퇴직은 이석채 전 회장 때인 2009년 12월 이후 4년여 만이다. 10일부터 공식적인 명예퇴직 신청 절차가 시작됐다.

명예퇴직 신청 기간에 중간 관리자들의 고충이 컸다. 아래위로 치여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A팀장은 “지난 한두 주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담당 임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명예퇴직 신청 상황을 체크하고 재촉했다. 부하직원들의 불만도 팽배했다. “내가 왜 명예퇴직 대상자냐”며 눈을 부릅뜨는 직원들을 설득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KT 고위 관계자는 “형식은 ‘자발적인’ 명예퇴직이지만 ‘살생부’는 일찌감치 일선 부서장까지 전달됐다”고 말했다.

KT 고위층의 구조조정 의지가 너무 강했던 걸까. 21일 최종 집계된 명예퇴직 신청자는 8320명에 달했다. 2009년 퇴직자(5900명)보다 2000명 이상 많은 수준이다. 목표했던 명예퇴직자 규모가 예상보다 일찍 채워져 신청 접수 마감일자도 애초 24일에서 사흘 앞당겨졌다. 퇴직자를 무작정 늘렸다간 회사의 자금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KT는 이번 명퇴자에게 지급되는 돈이 1인당 평균 1억7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에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그만둔다고 가정하면 퇴직금 명목으로 1조4000억원가량의 자금이 한꺼번에 필요한 셈이다.

조기 마감에는 명예퇴직 신청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다음주(27일) 영업 재개를 앞두고 조직 분위기를 하루라도 빨리 추슬러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KT는 23일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30일 퇴직 발령을 낼 예정이다. 명퇴 직원들은 근속 기간 및 정년 잔여 기간에 따라 퇴직금 외에 별도의 특별 퇴직금을 받는다.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받는 구조다. 최대 금액은 퇴직 전 급여의 2년치 수준이다.

KT 관계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유선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대거 명퇴를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목돈을 쥘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KT도 유선사업부에 근무하는 1958~1960년생을 중점 구조조정 대상으로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KT의 연간 인건비는 2조원을 웃돈다. 경쟁 회사인 SK텔레콤(4714억원)과 LG유플러스(4780억원)의 4~5배에 달한다. 회사 전체 실적도 내리막이다. KT는 작년에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냈다.

황창규 KT 회장은 18일 기자들과 만나 “아직 (KT 개혁의) 드라이브를 세게 걸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KT의 구조조정이 이번 명퇴를 기점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