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슬픔에 놀러 갈 마음 사라졌는데 황금연휴 어떡하지?"
이런 연휴가 또 있을까.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설레게 하는 2014년 5월의 ‘황금연휴’가 임박했다. 근로자의 날(5월1일)을 시작으로 주말(3~4일), 어린이날(5일), 부처님 오신 날(6일)이 몰려 있어 금요일인 2일 하루만 연차를 쓰면 엿새간의 연휴를 완성할 수 있다.

오랜만에 긴 연휴를 누리게 된 직장인들은 저마다 계획 세우기에 분주하다. 여행을 위한 항공권과 호텔 예약은 일찌감치 끝났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여행 자체를 취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놀러 가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과장 이대리는 5월 초 황금연휴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운명의 5월2일’ 눈치작전

5월 황금연휴를 누리려면 무엇보다 5월2일 휴가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날을 휴무일로 정한 기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금요일 연차를 내기 위한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다.

“그날은 평일 아닌가? 이렇게 한꺼번에 휴가를 쓰면 좀 곤란하지 않아?” 생활용품 업체 영업팀에서 일하는 신 과장은 지난달 새로 부임한 A본부장이 툭 던진 이 한마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 과장은 올초부터 황금연휴에 5박6일 일정으로 프랑스 파리 여행을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팀원들을 어르고 달래 그때는 본인이 꼭 쉬는 것으로 양해도 구했다. 그러나 직원들 휴가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선수를 친 A본부장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다.

신 과장은 “용기 있게 먼저 휴가원을 내면 ‘시범 케이스’로 반려될 수 있고, 너무 늦게 내면 ‘이미 휴가갈 수 있는 적정 인원을 초과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 가슴을 졸이며 타이밍을 재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연휴도 ‘짬밥 순’

“쉴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으니 이번엔 ‘짬’(경력) 순으로 잘라야겠다.” B부장의 이 한마디에 ‘6년째 부서 막내’ 김 대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모든 부원이 한꺼번에 5월 초에 휴가를 가겠다고 신청한 상황. 김 대리가 휴가 커트라인에 들어갈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내일모레면 과장인데도 아직 팀에 후배를 받지 못해 만년 막내 생활을 하고 있는 김 대리다.

B부장은 “다음 연휴 때는 꼭 배려해 주겠다”고 했지만 김 대리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작년 징검다리 연휴 때도 똑같이 말했다고요. 몇 달 전부터 여자친구랑 여행 계획 짜 놨는데 대판 싸우게 생겼어요. 근무시간에 웹 서핑하면서 여행 준비하는 선배들 보면, 아우 그냥 짜증이 확….”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홍 대리에게도 황금연휴는 남의 나라 얘기다. 팀장은 “나도 연차 쓸 거니까 연차들 자유롭게 쓰세요”라고 하지만, 그 말이 빈말이라는 건 팀원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애초에 꿈도 안 꿨어요. 어정쩡하게 여행 가느니 그냥 집에서 쉬려고요.”

이런 와중에 눈치 없는 한 신입사원은 홍 대리에게 “선배, 저 연차 써도 되죠?”라며 쪽지를 보내온다. 홍 대리의 심플한 답장. “응, 편할 대로 해. 근데 우리 팀장은 연차를 절대 안 쓰는 소문난 워커홀릭인 거 아직 모르지? 뒷감당은 알아서 해.”

○축복받지 못할 ‘민폐 결혼식’


“저희 두 사람, 소중한 순간들을 사랑으로 엮어 혼인의 예를 갖추려고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새 출발하는 저희의 앞날과 행복한 가정을 위해….”

전자회사 연구원인 박 과장은 갑자기 날아든 대학 선배의 청첩장에 얼굴이 굳어졌다. 청첩장에 적힌 결혼식 날짜는 ‘5월4일’. 대학 시절부터 온갖 신세를 져왔기에 봉투만 보내기도 곤란한 선배다. 지난 3월부터 맞벌이하는 아내와 세운 제주도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5월 황금연휴에 결혼식을 잡는 것은 올초부터 직장인들 사이에 ‘금기’로 통했다. 그러나 박 과장의 선배는 결혼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정말 급한 사정(?)이 갑자기 생겼단다. 청첩장 주는 사람 얼굴에도 미안한 기색이 가득해 면박을 줄 수도 없는 노릇. “어쩌겠어요. 형님의 경사인데 챙겨야죠. 그런데 성격이 불같으신 마눌님께서 이 상황을 이해해주셔야 할 텐데…. ㅠㅠ”

○5월을 놓쳤다면 6월을 노려라


공기업에 근무하는 최 대리 역시 5월2일 연차 쓰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을 활용해 부모님을 모시고 2박3일 제주도 여행만 간단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한때 여행사로 이직까지 고민해봤을 만큼 여행을 좋아한다는 최 대리가 왜 황금연휴를 포기한 걸까.

황금연휴는 6월에도 오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날인 4일을 시작으로 현충일(6일)과 주말(7~8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다. “눈치를 보니 다들 5월2일에 연차를 쓰려고 경쟁이 치열하더라고요. 저는 이날은 쿨하게 포기하는 대신 6월5일 연차를 찜해놨죠. 한 달만 기다렸다가 대만 여행을 느긋하게 다녀올 거예요. 투표도 사전투표로 미리 싹 마쳐놓고 여유롭게 출국하는 걸로 동선을 다 짜 뒀습니다. 음하하!”

○세월호 충격으로 여행 취소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직장맘 송 차장은 지난 주말 내내 TV를 보면서 울어 눈이 퉁퉁 부었다. 한 살배기 딸을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맞벌이를 하는 그는 평소에도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출근을 염두에 두고 엄마와 떨어져 있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 돌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송 차장은 TV에서 생중계되는 세월호 구조 모습을 보고 마음이 울컥했던 것. “엄마가 되고 나니 자식을 잃는 슬픔을 더 절절히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는 황금연휴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여행에 쓸 돈을 기부할 생각이다. 세월호 사고 가족을 위한 모금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주위에 저 같은 경우가 많아요. 그냥 아이들 데리고 산소나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 탈 없이 잘 크게 해달라고 기도할 겁니다.”

임현우/안정락/김은정/황정수/강현우/김대훈/김동현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