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모두가 운다 > 세월호 침몰 닷새째인 20일 오전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겠다”며 나선 실종자 가족과 이를 제지하던 여경이 전남 진도대교 앞 도로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 모두가 운다 > 세월호 침몰 닷새째인 20일 오전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겠다”며 나선 실종자 가족과 이를 제지하던 여경이 전남 진도대교 앞 도로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 오후 1시50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된 정부서울청사에 뉴스속보를 본 몇몇 장관이 들어섰다. 안전행정부가 이들에게 보고한 내용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요지였다. “이미 368명을 구조했으며 큰 피해는 없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재난 예산 편성을 위해 19일 출근해 이 상황을 전해 들은 기획재정부 간부들은 “실종자 가족에겐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라고 탄식했다. 대형 여객선이 침몰한 지 5시간이 지났는데도 그토록 엉터리로 상황을 파악해 부실하게 대응했느냐는 자탄이었다.

온 나라를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재난대응 체계가 완전히 무용지물임을 드러낸 탁상행정의 결정판으로 비판받고 있다. 사고 발생 초기 현장 구조당국의 대응 능력 부재, 이젠 언론이 지적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발표 내용, 여전히 불분명한 현장 지휘체계, 유가족과의 어설픈 현장 소통…. 대참사의 근인(近因)이 선박의 무리한 증축과 미숙한 운항, 선장의 야멸친 도주 등이라면 결정적 순간에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은 실종자 가족과 국민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앗아간 원인(遠因)이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행정안전부 간판을 안전행정부로 바꿔 달면서 그럴싸한 재난대응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랑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 관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초보적 매뉴얼조차 알지 못했다.

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왜 실종자 가족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려 하는지를 생각해보라”며 “장관이든 청장이든 누구 하나 믿음을 주는 사람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전단(UDT) 소속 잠수사들이 20일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탐색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전단(UDT) 소속 잠수사들이 20일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탐색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침몰 5시간 뒤 안행부, 장관들에게 "368명 구조…이만하길 다행"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16일 오후 8시40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단상 위에 섰다.

이 장관은 “해수부 장관으로서 큰 책임을 통감한다”며 “문해남 해양정책실장을 현장 총책임자로 임명해 만반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실장을 총책임자로 한 것은 전적으로 해수부 자체 판단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이끌고 있는 안전행정부나 구조 현장을 지휘하고 있던 해양경찰청 측과 전혀 조율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 실장이 꾸린 대책팀은 재난 대응체계나 구조활동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과 정보, 경험이 없었다. 구조 상황이나 잠수사 투입 여부 등을 캐묻는 실종자 가족들의 질문에 속수무책이었다. 흥분한 가족들은 문 실장의 멱살을 잡고 의자를 집어던졌다.

되풀이되는 재난…구멍난 '안전 행정'
1분1초가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 같은 혼선은 정부부처 간 정보 교환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에서 지휘체계의 혼선만 불러왔을 뿐이다. 심지어 해수부 산하기관인 해경 측 움직임도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세월호 사태를 지휘할 컨트롤타워는 17일 오후에야 가까스로 구성됐다. 정홍원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이 장관과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 부본부장을 맡는 형태였다. 하지만 지휘체계 정립 문제로 금쪽같은 24시간이 지나는 동안 생존자들을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허망하게 지나가 버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탑승자-실종자-구조자의 숫자가 계속 틀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지적이다. 정부 내 엇갈린 상황 판단도 슬픔과 불안에 지친 가족들을 분노케 했다. 지난 16일 해수부는 세월호가 기존 항적을 이탈하지 않았다고 한 반면 해경 측은 항적을 벗어났다고 상반된 발표를 했다.

17일 중대본은 잠수사가 선체에 진입했다고 발표했지만 해경은 진입 못했다고 밝혔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 스스로 위험이나 재난 관리에 관한 제도를 숙지하지 못한 것 아니냐”며 “국민들은 이번에 우왕좌왕한 모습을 보인 정부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장 유가족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지난 17일 정 총리의 미숙한 현장 행보는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그는 목포에서 관계장관회의를 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가족이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러 왔구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그저 10여분 동안 의례적인 위로의 말만 한 뒤 서울로 돌아가려다 봉변을 당했다. 구조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대형 TV모니터를 유가족이 모인 진도실내체육관에 설치한 것은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후였다.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지연되는 구조작업으로 확산됐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1차 대응 기관은 해경이지만 초동대응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선박이 빠르게 침몰하고 있는 데도 해경은 선박에 접근하고 나서 해상구조에 집중했다. 선체 대부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30분가량이 지난 뒤인 16일 오전 11시24분에야 잠수사가 처음으로 투입됐으나 인원도 20명에 그쳤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부분 이번 사고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부르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시스템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선사와 선장도 처벌해야 하지만 재난 당국자들의 행태도 엄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진도=김재후/김우섭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