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업에 ‘고수익’이 보장되는 전문직으로 각광받던 한의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의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감하면서 한의원 폐업이 늘고 있다. 새로 개업한 뒤 2~3년을 버티지 못하는 한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상태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우려의 말까지 나온다.

○생존 경쟁 내몰리는 한의사

한의원 부원장 평균 월급 300만원대…그나마도 '별따기'
대한한방병원협회에 따르면 30병상 이상 갖춘 28개 주요 한방병원의 외래환자는 2009년 194만명에서 2013년 176만명으로 4년 새 18만명 줄었다. 환자 수가 줄어들다 보니 문 닫는 한방병원·한의원이 크게 늘었다. 한방병원은 2012년 35곳, 지난해에는 49곳이 폐업했다.

동네 한의원도 지난해 828곳이나 폐업 신고서를 냈다. 10년 전인 2003년 폐업한 한의원 수는 한 해 577곳 정도였다.

한의사로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2월 D대 한의학과를 졸업한 강모씨(여·27)는 1년간 인턴까지 마치고 최근 한의원 부원장(한의원에 취직해 일하는 한의사) 자리에 10곳 넘게 지원했으나 모두 떨어졌다. 서울에서는 부원장 자리 하나에 70~80명이 지원하기 때문이다. 부원장으로 취직해도 초봉은 월 200만원 정도에 그치는 사례도 있다. 잘해야 350만원을 받고 많으면 400만원 수준이다.

한진우 전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인산한의원 원장)는 “10년 이상 운영해온 한의원들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이제 막 한의대를 나와 개업한 한의사들은 2~3년을 못 버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일부 한의원은 다이어트, 비만, 한방성형 등으로 특화를 시도해 보지만 신통치 않다”고 전했다.

○한의대 인기 급락

한의사의 위치가 흔들리면서 한의대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 대성학원이 만든 2014학년도 입시 자연계 배치표를 보면 지원 점수가 높은 순서는 서울대 의예과를 시작으로 45번째까지 모두 의대·치대가 차지하고 있다. 수능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이 전국을 일주하며 ‘의·치대’를 다 채운 다음 46번째에 가서야 경희대 한의대가 등장한다.

이규운 대성학원 입시전략연구센터 분석팀장은 “2002학년도 입시에서는 경희대 한의대가 서울대 의대, 연세대 의대, 울산대 의대 다음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경희대 한의대보다 점수가 낮은 곳은 서남대 의대 정도”라고 말했다.

○팔다리 묶어 놓은 한방 정책

한의사 위기가 한순간에 찾아온 것은 아니다. 홍삼 제품 대중화와 각종 영양제,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 복제약까지 나오면서 한약 시장이 계속 위축됐다.

규제 일변도인 정부 정책이 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P한의원 원장은 “동네 헬스클럽이나 목욕탕에서 쓰는 혈압계·체온계·인바디 정도만 한의원에서 쓸 수 있다”며 “정부가 한방에 대해서는 팔다리를 다 묶어놨다”고 비판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현대 의료기기를 한의원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새로운 약을 만들어도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의사 수급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의 한의사는 1만8198명이었다. 매년 900명가량의 신규 한의사들이 배출된다. 서울 관악구의 한 한의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한의사를 비롯해 의료 전반의 인력을 늘리는 정책을 폈다”며 “한의대를 졸업하면 동네 유지로 대접받던 시대는 벌써 끝났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