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IoE시대 키워드는 개방형 생태계
누군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월스트리트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실리콘밸리는 미국 정보통신기술의 중심이고, 월스트리트는 금융의 본거지다. 그런데 어떻게 실리콘밸리가 월스트리트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얘기인가.

이를 이해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는 IT(정보기술) 산업의 그 끝없는 확장성에 대한 사전 지식도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실리콘 밸리는 우리의 삶 자체를 자산(자본)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에, 자산 운용으로 생존하는 월스트리트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칼럼을 쓰는 신예 IT 비평가 예브게니 모로조프의 얘기다.

우리의 삶이 자산으로 변한다? 이는 또 무슨 얘기인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수년 안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데이터로 기록돼 디지털 기업들의 데이터 분석가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스마트 칫솔은 우리가 언제 양치질을 하는지, 얼마나 자주 하는지, 구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한다. 이 칫솔은 친절하게도 우리가 치과 병원에 가야 할 시점을 알려주지만, 우리의 구강 위생기록은 모두 데이터로 기록돼 컴퓨터가 관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냉장고는 주스와 우유가 떨어지는 시점을 알려주고, 스마트 젓가락(혹은 포크)은 음식이 얼마나 단지(혹은 짠지) 알려주면서 차곡차곡 내 식생활 습관 정보를 수집한다. 이런 식으로 스마트 기기들은 내 차와 침실과 내 시야(안경), 심지어 주머니까지 들어와서 내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분석해 이를 데이터화한다. 또 이런 기기들은 만물인터넷(IoE)으로 모두 연결돼, 한 사람의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 예측을 한다. 내 일상이 금전적 가치를 갖는 ‘재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아마존은 내 구매 패턴을 예측해 내가 구매 주문을 넣기도 전에 물건을 배송하는 ‘예상 발송’을 하고, 구글은 우리가 사고를 당하거나 채무를 갚지 못할 확률 등의 위험 예측에 그 어떤 보험회사나 은행보다 뛰어나다. 결과적으로 보험이나 펀드 상품 판매에서도 월스트리트의 어떤 회사보다 앞서게 된다. 이게 이미 맞닥뜨리기 시작한 우리의 미래다.

산업화 이후 글로벌 경제는 자본을 가진 사람(국가)이 우위적 지위에서 통제와 조절을 해왔다. 금융자본의 힘이 곧 모든 것을 지배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와 IMF(국제통화기금) 지배라는 처절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이런 글로벌 경제 질서에 새로운 균열이 생긴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앙시엥 레짐이 돼 실리콘밸리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이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패권을 걸고 격돌하고 있는 이 대회전에서 우리가 소외돼서는 국민소득 5만달러 선진국 진입의 꿈을 달성할 수 없다. 3D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CEO)이자 ‘롱테일 법칙’ 등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 크리스 앤더슨은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최한 ‘창조경제 글로벌포럼’에서 “과거 10년은 웹 상에서 새로운 사회·혁신 모델을 찾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그것들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기간이 될 것”이라면서 “창조경제의 핵심은 개방형 혁신 생태계 구축”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는 기회와 도전의 위험을 동시에 맞고 있다.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서의 창조경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개방형 창조적 혁신’을 통해 창조경제 발전모델을 만들어나간다면 우리가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질서를 새롭게 주도할 블루오션의 창출, 바로 그것이 창조경제의 또 다른 미션이다.

장광수 < 한국정보화진흥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