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잇달아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다. 올 들어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의원들만 34명에 이른다. 누구보다 열심히 의정 활동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던 의원들이라고 한다. 밥값을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책망과 의회에 대한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웠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의원들의 발언에서는 깊은 고뇌가 읽힌다. 1955년부터 의정활동을 해왔던 존 딩겔 하원의원은 “지금 의회는 내가 알고 사랑하던 의회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중앙 정치에 환멸을 느껴 지방의회로 가겠다고 선언한 의원도 있다. 세입세출위원회를 이끌던 공화당 데이브 캠프 위원장의 은퇴는 실로 전격적이다. 그는 세제개혁법안을 제정해 의회 통과를 추진했지만 유야무야된 것에 무거운 책임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연방 정부가 폐쇄되고 사상 초유의 디폴트를 겪으면서 국민의 실망과 대중 민주주의의 추락을 절감했을 것이다. 미 의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지난해 11월 조사에서 신뢰도는 9%에 불과했다. 미 정계에서 중간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불출마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정치인들의 자각과 책임감이 한국과 너무 대조적이다. 국민의 실망과 불신이 아무리 깊어도 한국 의원들에게선 자괴감이나 부끄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일반 국민은 11.8%에 불과했지만 의원들은 71%나 됐다. 국회의원들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는 89%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의원들이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권력에 맛들여 의회 권력만 다락같이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엉터리 의원입법은 쏟아지고 본의회에서는 막말과 야유가 끊이질 않는다. 국회선진화법을 고치고, 중진의원 협의체를 만들어봐야 여야 합의가 될 리 만무하다. 특권을 내려놓는다고 했지만, 세비 삭감이나 무노동·무임금 등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자진 사퇴하는 미 의원들을 보고는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