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대림자동차에 이어 국내 2위 모터사이클 업체인 S&T모터스가 지난 1월 라오스 코라오그룹에 인수됐다.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과 코라오홀딩스가 160억원씩 총 320억원을 투자해 S&T모티브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32%)과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인수 직후 오 회장은 S&T모터스 직원 250여명을 3개조로 나눠 1주일씩 라오스로 초대했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성장성과 코라오의 경영 현황, 회사의 비전을 현지에서 직접 설명하기 위해서다.

2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만년 2위’ 기업 임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성상용 코라오홀딩스 부사장은 “경우에 따라 1년도 넘게 걸리는 인수합병 뒤 통합 작업이 3주 만에 끝났다”고 말했다. S&T모터스의 사명은 지난달 1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KR모터스’로 바뀌었다.

한국(KR) 브랜드로 세계시장 공략

라오스 최대 민간 기업 코라오를 이끄는 오 회장의 경영은 ‘비전’과 ‘신뢰’ ‘현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번 KR모터스 인수에서 그가 제시한 비전은 ‘5년 뒤(2019년) 매출 1조원’이다. 작년 KR모터스 매출 920억원의 열 배가 넘는다.

그는 “KR모터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해외 영업력이 약한 게 실적 부진의 원인이었다”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닦은 현지화 영업력을 활용해 20개국에서 500억원씩만 하면 1조원 달성이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모터사이클 시장을 대만과 인도가 장악하고 있지만 ‘한국의 기술력’을 활용하면 시장을 빼앗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사명도 코리아(Korea)를 연상하게 하는 KR을 붙였다.

오 회장은 현지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해 기존에 진출해 있는 캄보디아, 미얀마 등 동남아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까지 20여개국에 이미 직원들을 파견했다. 그는 “현지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고 현지 파트너를 정해 시장을 개척하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R모터스를 최대한 활용해 인도차이나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겠다는 게 그의 장기 사업전략이다.

2010년 11월 코라오홀딩스를 국내에 상장할 때 오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코라오에 투자하는 것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성장성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공모가 4800원(액면가 0.25달러)이었던 코라오홀딩스 주가는 3년 반이 지난 1일 2만5050원으로 올랐다.

성 부사장은 신한금융투자 IB본부 부장으로 일하던 2006년 오 회장을 처음 만났고, 그가 제시한 성장 비전에 이끌려 2008년 이직했다. 성 부사장은 “회사 구성원 개개인에게도 적절한 비전과 임무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의 실패를 기회로

1990년대 초반 베트남에서 무역회사를 경영하던 그는 1996년 베트남 정부의 갑작스러운 수입금지 조치로 졸지에 파산했다. 무일푼이 된 그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평소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인도차이나반도 여행길에 올랐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거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던 오 회장은 중고차 시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라오스는 1500만 인구의 80% 이상이 소규모 농업에 종사해 트럭과 같은 상용차 수요가 많다. 하지만 유통망이 부실하고 관세가 높아 10년 이상 된 일본 중고 트럭이 2만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다.

오 회장은 한국에 사는 누나에게 2000만원을 빌려 중고 스포티지 2대를 들여왔다. 그는 “대당 1만5000달러로 가격을 매겼더니 들여오는 대로 팔려나갔다”며 “돈을 좀 모아 AS센터를 차려 사후관리까지 해주자 코라오의 인지도가 급격히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1997년 설립한 중고차 유통업으로 시작한 코라오디벨로핑(코라오홀딩스의 100% 자회사)은 질 좋은 한국산 중고차를 들여와 일제보다 30%가량 낮은 가격에 공급하면서 5년 만에 라오스 최대 민간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고차 유통에서 자동차·모터사이클 제작, 건설, 전자제품 유통, 바이오디젤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코라오는 라오스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오 회장은 한국 동포들에게 ‘라오스의 정주영’이란 별명을 얻었다.

라오스 어린이 4000여명 무료 교육

코라오그룹의 임직원은 3500여명에 달하지만 한국인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오 회장은 “주재원 중심으로 사업을 하면 현지 기업과의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현지화는 사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환원해 현지인에게 존경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라오가 자체 생산한 모터사이클을 처음 출시한 건 2004년. 방향지시등에 불량이 발견됐다. 당시 일부 임원이 반대했지만 오 회장은 끝내 시장에 나가 있는 3000여대 물량 전부를 리콜했다. 이를 계기로 코라오의 라오스 모터사이클 시장 점유율은 3년 만에 50%를 돌파했다. 코라오는 연간 4000여명의 라오스 어린이들에게 초·중등 수준의 무료 교육 사업도 하고 있다.

“車 외에 한눈 안 판다” 3년 약속 지켜

오 회장은 1997년 창업할 때 직원들에게 ‘10년 근무하면 한국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150명이 1주일간 한국에 다녀갔고 올해는 200명이 넘을 예정이다. 1인당 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전액 회사가 낸다.

이승기 코라오 인사담당 부사장은 “비용 부담이 없지 않지만 현지 임직원들에게 애사심을 키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2010년 상장 당시 주주들에게 “3년간은 한눈팔지 않고 코라오홀딩스의 자동차 사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이번 KR모터스 인수 이전까지 큰 변화 없이 회사를 경영했고 코라오홀딩스의 매출은 2010년 747억원에서 작년 3232억원으로 3년 만에 네 배 뛰었다. 소액주주 차등 배당은 물론 매년 2회 직접 회사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상장 당시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오고 있다.

■ 오세영 회장 프로필

△강원 동해(51) △성균관대 섬유공학과 졸업 △1987년 코오롱상사 입사 △1990년 베트남 터보트레이딩 창업 △1997년 라오스 코라오디벨로핑 창업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