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정유…장치산업의 위기 "공장만 지으면 돈 버는 시대 끝"
재계에서는 한때 “포스코의 사업 모델이 삼성전자보다 낫다”는 말이 있었다. 신제품 개발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해야 하는 삼성전자와 달리 포스코는 용광로(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 철을 만드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공정만 반복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규모 생산 설비를 기반으로 한 장치산업은 2000년대 들어 큰 호황을 누렸다. 중국 등 세계 경제의 성장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리막길에 들어서더니 이제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대표적 장치산업인 철강·정유·시멘트 업종의 영업이익률이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 격화에 장치산업 직격탄

17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08년 14.9%를 기록한 철강업종의 영업이익률은 매년 하락해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5.4%를 기록했다. 100원어치를 팔면 15원 남던 것이 이제는 5원밖에 못 번다는 얘기다. 대표 기업인 포스코의 영업이익률도 2008년 17.2%에서 지난해 4.8%로 급락했다. 이 같은 수익성 악화는 경기 부진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 경쟁 심화가 주요 원인이다. 중국 철강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공급이 넘쳐나고 가격이 떨어진 것이 직격탄이 됐다.

정유업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정유업종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몇 년까지도 2~3%대를 유지했지만 2012년 1.1%로 추락했다. 지난해 3분기 누계로도 1.8%에 그쳤다. 중국 등 해외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구도와 원화 강세로 수출 여건이 나빠지면서 정제 마진이 떨어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동에서도 이제 원유를 직접 정제하려고 한다”며 “셰일가스 등 대체재까지 등장해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멘트업종 영업이익률도 작년 3분기 누계로 -1.7%를 기록했다. 제품 가격 인상으로 2012년 반짝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전방산업인 건설업 부진에 계속 발목이 잡힌 양상이다.

장치산업 성격이 강한 항공과 해운업종 역시 좋지 않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모두 지난해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했다. 양대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알짜 자산 매각으로 연명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새 먹거리 찾기 강화될 듯

업종 전문가들은 장치산업에서 상당 기간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새 먹거리 찾기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9년 2월 취임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모색했지만 돌아온 것은 실적 악화와 부채비율 상승이었다. 권오준 신임 회장이 ‘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내세운 것은 철강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동국제강의 포항 후판공장 폐쇄와 동부제철의 인천공장 매각 추진 등은 철강업종에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유업계는 신사업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나 정보전자소재 등에 힘을 쏟을 태세다.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사장은 올초 신년사에서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소재 제조업에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멘트업계에서는 동양시멘트가 강원 삼척시에서 화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했지만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진척이 불투명해졌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은 “굴뚝(장치)산업에서도 얼마든지 고부가가치 혁신이 계속될 수 있다”며 “사양산업이라고 여겨 설비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M&A를 통해 쉽게 새로운 ‘경제적 지대 추구(rent-seeking)’를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서욱진/배석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