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13일 14:56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은 부사장 신분이던 작년 10월말 극비리에 대만으로 출국했다. 한국 증권사 인수에 관심을 보여온 대만 1위 증권사 유안타증권에 매각을 타진하기위해서다.

◆'동양사태'로 문닫을 뻔한 동양증권, M&A만이 '살길'

당시 동양증권은 M&A가 안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해 9월말과 10월 초 동양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동양증권은 계열사 회사채와 CP에 대한 불완전판매 혐의로 금감원의 검사를 받고 있었고, ‘사기 CP’발행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했다. 4만1000여명의 회사채·CP 개인투자자의 1조6000억원 가량 피해가 예상되는 ‘동양 사태’는 당시 금융당국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가 됐다.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이 커지고 시장에서 계열사 CP를 마구 판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영업으로 신뢰를 잃어 동양증권의 영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이후 동양증권은 고객예탁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고객을 중심으로 15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갔고,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의 계속된 거센 항의로 견디다 못한 일부 직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서 부사장은 “한 치앞도 보이지 않던 상황 M&A밖에 답이 없었다”며 “죽기살기로 유안타증권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창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동양증권 임직원들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측근이던 정진석 당시 사장에게 등을 돌렸고, 서명석 부사장을 구심점으로 위기 대응 조직을 만들었다.

◆유안타증권, 10년만에 한국시장 재도전

유안타증권은 11월 삼정KPMG를 자문사로 선정하고 동양증권 실사를 시작했다. 2004년 우리투자증권(옛 LG투자증권) 인수를 추진한 뒤, 10년만에 다시 한국시장 진출을 타진하게 된 것이다.

동양증권이 국내 2위 점포망과 탄탄한 CMA 고객, 국내 1위 주식자본시장(ECM) 투자금융(IB) 역량 등을 갖췄다고 강하게 어필했죠.” 서 사장은 비록 동양증권이 ‘동양 사태’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금 등 앞날이 불확실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싸게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유안타증권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물론 유안타증권도 처음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2004년 당시 우리투자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되고도 인수에 실패한 경험을 맛본 이후, 한국 금융당국과 한국증권업계에 대한 불신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안타증권 내부에서도 ‘인수해보자‘는 임원은 소수였고, 대부분 인수에 부정적인 상황이었다.

◆불완전판매 리스크로 동양증권 매각 초반엔 회의적...

작년 12월 법원도 회사채와 CP피해자들의 변제대금 마련을 위해선 동양증권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조기 매각을 허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KB금융지주 등 국내 인수후보들도 초반에 동양증권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불완전판매 배상금 리스크와 ‘동양 사태’주범이라는 ‘낙인’때문에 선뜻나서지 않았다.

서 사장은 12월 사장직에 올라서자마자 M&A성사를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임원 반을 해임하고, 직원 500여명을 구조조정했으며, 점포 4분의 1을 통폐합했다.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상태인데, 매월 몇백억원의 임직원 임금과 관리경비를 내기조차 어려운 순간이었죠.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유안타 내부 반대기류에 '이상징후'

예상대로 2월 동양증권 매각 예비입찰에 유안타증권은 단독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유안타증권이 내부적으로 인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양증권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유안타증권 내부에서 인수를 추진한 임원들이 “한국에서 아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증권사 M&A에 왜 우리가 들어가느냐”고 공격을 받으면서 사실상 인수를 접으려한 것이었다. 실사도 잠시 중단됐고 동양증권은 생사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영업이 사실상 중단된 동양증권은 M&A에 실패하면 6월 만기가 도래하는 1500억원의 회사채를 막을 길이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시 1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잠이 너무 안와 수면제를 먹고 자야할 정도였죠. 유안타측에서 인수를 추진하던 임원도 당시 내부의 공격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서명석 사장의 당시 심정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감원도 당시엔 동양증권이 청산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안진 "이번이 마지막 기회"유안타 압박

매각주관사인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서 사장은 포기하지 않고 유안타증권을 끝까지 설득했다. 안진과 서 사장은 수시로 대만 유안타증권 본사 임원에 전화해 “이번에 안 사면 후회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또 “한국 증권시장이 아시아에서 저평가 돼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그래도 큰 기회가 오지 않았느냐. 지금이 기회다”라고 유안타증권에게 본입찰 참여를 요구했다. 2월 하순 동양증권 매각 본입찰에서 유안타증권의 단독 참여는 극적으로 결정됐다. 유안타증권 내부 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안타금융그룹 지주사인 유안타파이낸셜 홀딩스의 왕룽저우(王榮周ㆍ68)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증권이 기적같이 제기할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유안타의 조건부 제안에 '협상 원점으로'

하지만 여기서 안도할 상황은 아니었다. 유안타증권측은 본입찰에서 동양그룹의 CP판매가 법정에서 ‘사기’로 판명될 경우 인수를 철회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조건부 인수인 셈이다. 이 때문에 동양증권의 대주주인 동양인터내셔널과 동양레저가 법원에 유안타증권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신청을 돌연 철회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안타증권측과 동양증권 대주주측은 1250억원에 구주를 인수하고 15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는 등 인수 가격은 합의점을 도출했지만 ‘여러가지 제약 조건’에 대해 여전히 옥신각신했다.

◆본계약 체결 전날 오후 4시까지 '안갯속'...극적 타결

본계약 체결일인 3월 13일 하루 전인 지난 12일 오후 4시까지도 이 문제는 미궁 속이었다. 동양증권은 오는 14일 주주총회를 통해 유상증자안건을 처리하고 서 사장은 오는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기로 했지만 이 일정이 무산될 지 역시 가늠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서 사장과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의 피말리는 설득으로 유안타증권은 조건없이 동양증권을 인수하기로 본계약 체결 예정일 하루 전인 지난 12일 오후 5시에서야 최종 결론을 내렸다. 양측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13일 조촐하게 본계약 체결식을 가졌다. 서 사장은 “이제야 발을 뻗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