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6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으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임대소득 연 2000만원 이하 수십만 은퇴 생활자의 세 부담을 원안보다 70~90%가량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에 따라 월 100만원의 임대소득을 올리는 은퇴자의 세 부담은 원안(92만원)에서 80% 가까이 줄어든 17만원으로 대폭 낮아진다.

월세받는 은퇴자, 세금 80% 경감…분리과세 2년 유예도 검토
4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2주택자에게 14%의 분리과세 단일 세율을 적용키로 했지만 같은 조건으로 임대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에 한해서는 세부담을 현재보다 늘리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5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을 확정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으로 그동안 소득 신고를 성실히 해오던 은퇴자들은 단돈 1만원이라도 더 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임대소득 외에 특별한 소득이 없는 은퇴자에 대해선 14%의 분리과세 단일세율을 적용하지 않고, 현행대로 종합소득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100만원의 월세를 받는 은퇴자의 경우 14%의 단일세율 대신 종합소득세 최저세율인 6%를 적용한다는 의미다. 임대사업을 하면서 필수적인 비용이라고 여겨져 소득에서 빼는 단순경비율(45.3%)을 높이는 등 공제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정부는 월세소득 연간 2000만원 이하 임대사업자에 대한 분리과세 적용 자체를 2년 동안 유예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월세 소득으로 생계를 꾸리는 은퇴 임대소득자가 2주택 이상 다주택 보유자(136만5000명)의 30%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은퇴자가 달라진 세제의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발표된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도 부분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대책의 핵심은 세액공제를 통해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집주인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집주인의 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2주택 이하이고 월세소득이 연 2000만원이 안 될 경우 월세소득을 종합소득에서 따로 떼서 14%의 세금을 매기는 ‘분리과세’ 방안을 도입하기로 했었다. 근로소득은 기존처럼 계산하되 월세소득엔 14%의 고정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책 발표 다음날부터 분리과세의 허점이 노출됐다.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 소득자들은 분리과세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소득세 최저 세율(6%)을 적용받는 과표구간 1200만원 이하(각종 공제를 제외한 금액으로 실제 소득은 2000만원 이상) 은퇴자들의 세율만 6%에서 14%로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100만원의 월세 소득으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은퇴자 A씨의 사례를 보자. A씨는 그동안 임대소득을 국세청에 신고, 본인과 배우자 공제(360만원) 등을 포함해 연 17만7840원(종합소득세율 6%)의 세금을 냈다.

하지만 ‘2·26 임대시장 선진화 대책’에 따른 소득세법 개정으로 A씨는 1200만원의 임대소득에서 단순경비(임대소득의 45.3%)를 제외한 656만4000원의 14%에 해당하는 91만9000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한 달치 월세에 육박하는 소득세 부담을 더 떠안게 되는 셈이다. 같은 조건에서 연 2000만원의 임대소득을 올리는 B씨의 세 부담은 44만원에서 153만원으로, 연 600만원일 경우 세 부담은 1만9000원에서 45만9000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에 대한 전체 세금을 종합소득세율 6% 수준에 맞추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세금 부담은 당초보다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다만 그동안 소득세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은퇴자들이 새로운 세금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세종=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