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에서 초록마녀 엘파바 역과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 한국어 더빙을 맡은 배우 박혜나 씨.
뮤지컬 ‘위키드’에서 초록마녀 엘파바 역과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 한국어 더빙을 맡은 배우 박혜나 씨.
올겨울 뮤지컬 무대와 영화 스크린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공간에 배우 박혜나(32)가 있다. 이달 초 관객 10만명을 돌파해 겨울 시즌 뮤지컬 최대 흥행작으로 자리를 굳힌 ‘위키드’(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선 ‘초록마녀 엘파바’로 무대를 누빈다. 지난 8일 700만명을 넘어서며 애니메이션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겨울왕국’의 한국어 더빙판에선 ‘얼음여왕 엘사’의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죠. 운이 좋았어요. 뮤지컬 여배우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엘파바에 뽑힌 것도 그랬고, 엘사의 노래 녹음도 ‘위키드’ 공연 초반이던 지난해 11월 말 정신 없을 때 의뢰가 들어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그는 “한 번 와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이전에 몇 번 불렀던 TV 만화 주제가 녹음인 줄 알고 갔을 만큼 ‘겨울왕국’에 대해 몰랐다. 첫 녹음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려달라”는 얘기를 듣고서야 ‘엘사 오디션’인줄 알았다고 했다.

“합격 소식을 듣고는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쁠 때라 주저했지만 ‘제게 주어진 일’이라 여기고 하기로 했죠. 더빙 작업이 끝났을 때도 ‘겨울왕국’이 이렇게 크고 대단한 작품인 줄 몰랐어요.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겨울왕국’ 더빙판 녹음 작업을 한 제작사에 박혜나는 ‘구세주’였다. 제작사는 마감 시한이 임박할 때까지 엘사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여러 후보들을 번번이 퇴짜 놨던 디즈니 본사는 박혜나가 녹음한 대표곡 ‘렛 잇 고’ 뒷부분을 듣고는 바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작업은 시간에 쫓기며 진행됐다.

“엘사가 부르는 세 곡을 녹음하는 데 8시간이 걸렸어요. 관객에게 보여지는 캐릭터의 감정을 살리고 영상을 보며 입을 맞추면서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캐릭터를 해석하고 심경을 노래로 표현하는 작업이 뮤지컬과 비슷해 해낼 수 있었어요.”

박혜나의 ‘다 잊어’(원제:렛 잇 고)는 이렇게 탄생했다. ‘다 잊어’의 진가는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본 젊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확산됐다. 오리지널 ‘렛 잇 고’를 부른 ‘초대 엘파바’인 이디나 멘젤 못지않은 감성과 가창력으로 노래를 완벽히 소화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이 ‘렛 잇 고’ 부르기 대열에 동참하고 있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뮤지컬 배우의 감성으로 엘사에 녹아든 ‘다 잊어’를 잊지 못한다.

“엘사 캐릭터를 만들 때 엘파바를 염두에 뒀다는 얘기가 있듯이 ‘엘’로 시작되는 두 마녀에겐 공통점이 많아요. 어릴 적부터 마법의 능력을 숨겨야 했고 괴물로 몰린다는 점에서 감성이 통한다고 할까요. ‘겨울왕국’과 ‘위키드’는 이밖에도 비슷한 점이 많지만 무엇보다 관객에게 사랑받는 공통된 이유는 드라마 구성과 노래, 음악이 뛰어나기 때문일 거예요.”

2006년 뮤지컬에 데뷔한 그는 착실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실력 있고 노래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다가 ‘엘파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장기 공연이 처음이고 엘파바가 워낙 힘든 배역이다 보니 요즘 들어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친 것 같아요. 하지만 매번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관객을 마주하면 체력 안배는 생각하지 않고 그날 무대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되죠.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