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고속
[시론] 노후 장비에 발목잡힌 科技경쟁력
철도 역사에 새로운 기록이 더해졌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도연)에서 개발한 최고 시속 430㎞의 해무열차가 시속 421.4㎞로 안정적으로 시험주행을 마친 것이다. 내년 하반기 호남선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해무열차는 새 선로에서 시속 430㎞ 이상의 속도로 달릴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프랑스(최고 574.8㎞/h), 중국(487.3㎞/h), 일본(443㎞/h) 등 선진 고속철도 기술을 가진 나라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빠른 열차를 개발해야 한다. 아쉽게도 철도연의 시험장비로는 고속열차 구성품을 최대 시속 428km까지만 시험할 수 있다. 고속열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인력은 확보돼 있으나 최고 성능의 시험장비나 시험선로가 없어서, 더 빠른 고속열차를 개발 수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서 성능시험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연구 현장에서 연구시설·장비를 현대화·첨단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복잡하고 지난한 예산확보 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현대적 첨단 연구시설·장비가 구축됐다 할지라도 운영비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사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연구단지나 연구센터 자체의 건설은 해당 지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예산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운 면이 있다. 하지만 건설된 연구단지에 첨단 연구장비를 채우기 위한 예산확보는 대단히 힘겹고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적절한 연구시설·장비 보급과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의 우수연구 결과들은 첨단장비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우수시설·장비가 있는 곳에 세계의 인재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연구 현장은 아직 충분치 않다. 특히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정부연구기관의 연구시험장비가 노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걱정스러운 일이다. 노후 장비만을 운영 중인 연구기관들은 과학기술 경쟁에서 이미 뒤진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은 연구비를 투자해도 시험장비의 정밀도가 떨어진다면 질 높은 연구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후화되면서 방치된 시설·장비는 많은 공간을 차지해 연구환경을 악화시킨다. 노후화된 연구시설·장비가 공간만 점유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중으로 국민의 세금이 버려지는 셈이다.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의 실험실을 정밀·첨단의 시험설비로 채워야 한다. 물론 최고의 연구시설·장비를 구축해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구축된 시설·장비들이 잘 관리될 수 있도록 전문인력 지원과 운영비의 확보도 필요하다.

한편, 새롭게 갖춘 첨단 연구장비는 그 목록과 성능을 인터넷에 올려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첨단장비의 활용률이 높아지면 사용료도 낮출 수 있고, 확보된 사용료를 운영관리비로 투입해 장비의 수명도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비들은 중소기업이나 대학, 마이스터고 등 필요로 하는 곳에 값싸게 양도하거나 무료로 이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예산 효율성 면에서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종합적인 연구인프라 지원체계가 갖춰진다면, 연구기관이나 기업의 연구자들은 최고 연구성과물을 만들어 낼 것이다.

모두가 함께 쓰는 첨단 연구장비 덕분에 새로운 기술과 첨단 제품이 전국 어디서나 때를 가리지 않고 나오게 될 것이다. 연구기관은 물론 기업이 기술개발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돼,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일자리가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 내딛기 시작한 창조경제의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홍순만 <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