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SPA 브랜드에 도전장을 낸 토종 패션업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삼성에버랜드 ‘에잇세컨즈’ 디자이너들이 서울 수송동 본사에서 신상품 개발을 위해 토론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해외 SPA 브랜드에 도전장을 낸 토종 패션업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삼성에버랜드 ‘에잇세컨즈’ 디자이너들이 서울 수송동 본사에서 신상품 개발을 위해 토론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유니클로보다 싸게, 자라보다 빠르게, H&M보다 멋스럽게.’

해외 제조·직매형 의류(SPA)에 맞서는 한국형 SPA의 반격이 거세다. 토종 SPA 중에선 이랜드 ‘스파오’, 삼성에버랜드 ‘에잇세컨즈’, 신성통상 ‘탑텐’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스파오가 지난해 국내 SPA 최초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희망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일본·중국 점령 나선 ‘스파오’

이랜드의 스파오는 2009년 ‘토종 SPA 1호’로 출범했다. 작년 40개 매장에서 매출 1400억원을 올렸다. 서울 명동 1호점의 경우 최근 3개월 연속 월 매출 20억원을 돌파했다. 명동의 한 의류상은 “월 매출 10억원 정도 올리면 괜찮다는 평을 받을 규모인데도 20억원어치 넘게 팔았다니 대단하다”고 말했다.

스파오의 모델이자 극복 대상은 유니클로다. 유니클로보다 평균 10~20% 싸게 가격을 매겼다. 디자인은 훨씬 밝고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옷이 많다. 보통 2주일 정도면 신상품으로 교체한다. 캐주얼 분야에서 ‘33년 업력’을 쌓은 이랜드의 디자인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종민 스파오부문장은 “지난해 처음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이랜드는 작년부터 의류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베트남, 스리랑카, 미얀마 등으로 다변화했다. 김 부문장은 “원가를 최대 30%까지 낮출 수 있어 올해는 흑자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파오는 유니클로의 ‘히트텍’과 같은 간판 상품도 발굴해냈다. 대표적인 제품이 작년에만 30만장 팔린 ‘패쪼’(2만9900원)다. 누리꾼들이 ‘스파오 패딩 조끼’를 줄여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 최근엔 ‘스파오 포 맨’이라는 서브 브랜드로 남성복을 강화하고 있다. 남성복이 취약한 유니클로의 약점을 파고든 전략이다.

스파오는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도 나섰다. 지난해 7월 일본에 진출, 유니클로의 본토에서 ‘맞짱’을 선언했다. 지난달엔 중국에도 첫 매장을 열어 3일 만에 7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스파오는 올해 대만, 홍콩 등에도 대형 매장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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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빈폴 꿈꾸는 ‘에잇세컨즈’

에잇세컨즈는 ‘삼성이 만든 SPA’라는 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는 브랜드다. 실제로 이 회사는 “에잇세컨즈를 ‘제2의 빈폴’로 키우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2년 2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1호점을 연 뒤 지난해 매출 1300억원, 매장 25개로 급성장했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내년에는 해외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에잇세컨즈는 유니클로보다는 자라나 H&M의 대항마에 가깝다.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대량생산하는 유니클로 방식은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제일모직 디자이너 사단의 역량을 총동원해 상품의 다양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디자이너 40명을 포함, 190명이 일하고 있다.

양수진 에잇세컨즈 사업운영팀 차장은 “유니클로 옷은 너무 밋밋하고 자라나 H&M은 디자인은 화려해도 한국인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며 “국내외 SPA를 대상으로 상표를 떼고 소비자 품평을 들어보면 실제로 에잇세컨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에잇세컨즈는 내년에는 중국에 매장을 낼 계획이다. 아직 해외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일본, 미국, 프랑스, 중동 등의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김정미 에잇세컨즈 부문장은 “패션은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며 “아시아에선 유럽 태생인 H&M이나 자라보다 우리가 더 강점이 있다”고 자신했다.

○‘초스피드’로 무장한 탑텐

탑텐은 토종 SPA 중 출발은 가장 늦었지만 성장 속도는 제일 빠르다. 2012년 6월 서울 대학로에 1호점을 연 뒤 매장을 68개로 늘렸다. 작년 9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목표는 1500억원이다.

탑텐은 기본적으로 유니클로를 벤치마킹했다. 60%는 유니클로의 전략을 따르고, 40%는 탑텐 고유의 강점을 강조하는 식이다. 김금주 탑텐 사업부문장은 “초저가 전략, 빠른 상품 회전, 깔끔한 디자인은 유니클로와 같다”면서도 “유니클로의 약점인 옷매무새와 세세한 디자인은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젊은 감각을 불어넣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유니클로의 ‘히트텍’ 격인 탑텐의 ‘온(溫)에어’는 목 부분 디자인을 예쁘게 다듬고, 기장도 한국인에게 맞게 최적화했다. 지난해 20만장을 생산해 1주일 만에 다 팔았다. 올해는 100만장을 생산하기로 했다. 지난해 한국에 시장조사를 나온 스페인 자라 본사 직원들이 탑텐 매장에서 수십종의 상품을 사 가기도 했다.

탑텐의 경쟁력은 ‘스피드’에서 나온다. 직원이 60명으로 조직이 작아 의사결정이 빠르다. 실제로 염태순 회장이 SPA 사업 착수를 지시한 뒤 석 달 만에 1호점을 열었다. 전체 물량의 60%가량을 미얀마의 자체 공장에서 생산, 주문 후 2주~1개월이면 신상품을 매장에 걸 수 있다. 김 부문장은 “신성통상이 다른 회사에 옷을 납품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게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