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PC의 몰락 ?
2004년 미국 MIT에서 발간하는 기술잡지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에서 ‘사라지길 거부하는 10대 기술’을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다. 신제품에 밀려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생존하고 오히려 매출을 늘려가는 제품들이었다. 아날로그 시계와 타자기, 삐삐, 팩스, 카세트테이프, 진공관 등이 선정됐다.

무엇보다 대형 컴퓨터가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1981년 PC가 나오면서 컴퓨터 시장을 물려준 기기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은행 등 대형 데이터 처리 기업들은 대형 컴퓨터를 여전히 선호한다. 보안과 안정성 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처리 작업 또한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다. 대표기업인 IBM은 아예 인공지능 기능이 결합된 대형컴퓨터 왓슨에 무려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올해 CES에서는 PC의 몰락 내지 종말이 화젯거리라고 한다. 세계 최고의 PC기업으로 불렸던 인텔의 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기조연설에서 줄곧 웨어러블과 모바일 태블릿 혁신 등의 용어만 사용하고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서버라는 단어는 아예 말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CEO도 ‘역사 속 PC’ 시대라는 용어를 자주 쓰고 있다. HP도 틈만 나면 적자투성이인 PC사업부를 떼내려 하고 있다.

PC 역사 33년 만의 최대 수난이다. PC 판매도 급감하고 있는 마당이다. 미국 조사회사 IDC가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PC 세계 출하대수는 전년 대비 10% 줄어든 3억1455만대라고 한다. 사상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태블릿 PC나 모바일기기가 그 빈자리를 가로챈다. 물론 PC 몰락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0년 전에 이미 “농업국가 시대엔 모든 차가 트럭이었지만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승용차로 변하고 트럭은 특수 수송차량으로 변했다”며 “PC는 농장 트럭 신세가 될 것”이라는 말로 몰락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 대형 컴퓨터가 살아나는 마당에 PC가 죽어간다는 게 아이러니다. 하지만 PC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소비자들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여전히 데스크톱을 쓸 것이며 다만 PC 교체기간이 늦춰질 뿐이라는 것이다. 사양산업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사양 기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