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시장형 실거래가제' 재검토 논란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병원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고, 환자의 본인 부담금도 줄여주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를 두고 정부와 제약업계 간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제약협회의 간담회 이후 접점을 찾는 듯했으나 복지부가 이후 예정대로 내년 2월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재차 경색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사진)과 이경호 제약협회장, 김원배 제약협회 이사장은 16일 간담회를 하고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의 전반전인 문제점을 논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문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와 제약협회, 그리고 관련 전문가 등으로 협의체를 최대한 빨리 구성해 정확한 데이터 등을 분석해가며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제약협회는 문 장관의 ‘제로 베이스’ 발언에 무게를 두고 원점 재검토를 위한 협의체로 받아들였다. 이 회장이 “협의체 구성은 좋은 제안”이라며 “그간 임기응변적인 제도가 쏟아져 매우 복잡하고 산업 전반에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부담을 줬다는 점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화답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간담회 이후 복지부가 ‘당초 일정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동욱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별도 브리핑을 통해 “유예기간이 내년 1월로 끝나 2월부터 다시 적용되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의 시행 시점을 지금 바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맹호영 보험약제과장은 협의체 구성과 관련, “예정대로 시장형 실거래가제를 시행하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실무 차원에서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말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문 장관의 ‘제로 베이스’ 발언을 전향적으로 해석했던 제약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양측 가운데 한쪽은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며 “시행하기로 못박아놓고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제약업계는 정부가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를 부활시킬 경우 협의체 보이콧은 물론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는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15개월간 시행됐으나 지난해 4월 정부가 약값을 평균 14% 일괄 인하하면서 제약업계의 이중부담 완화 차원에서 2년간 유예됐다.

제약사들은 “전체 병원시장의 10%를 차지하는 대형병원에는 초저가에 납품하고 90% 비중을 차지하는 의원급 병원에서 이익을 보전하는 영업 관행상 종합병원 납품가를 실거래가로 하는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완화를 위한 실거래가 파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 시장형 실거래가제

병원 등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면 보험 등재가와 구입 금액 간 차이의 70%를 돌려주는 제도. 일괄 약가 인하 조치로 2012년 일시 중단됐으나 내년 2월 재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