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KIC를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국부펀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안홍철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KIC를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국부펀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외부에서 돈을 주고 산 리서치 보고서에 의존해 투자를 결정하는 식으로 운영하지 않겠다.”

한국의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 사령탑을 맡은 안홍철 사장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개혁 방침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KIC는 국부펀드 시늉만 내왔을 뿐 제대로 된 투자 시스템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투자 수익률도 시장 평균은 넘지만 기대에는 못 미친다”고 혹평했다.

안 사장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메릴린치 투자를 지목했다. KIC는 2008년 2월 메릴린치에 주당 28달러의 가격으로 20억달러를 투자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투자금액 대비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다.

그는 “메릴린치 투자는 의사결정 과정과 타이밍 모두 잘못됐다”며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말했다. 당시 KIC 감사였던 그는 “일본 미즈호은행, 쿠웨이트 투자청, 싱가포르 테마섹 등 내로라하는 국제 금융기관들의 결정에 휩쓸려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미투(me too) 투자’를 감행했다”고 지적했다. 안 사장은 “삼성전자 주식이 좋은지 누가 모르냐”며 “핵심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가격과 타이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IC 운영 방침에 대해 “축구에 비유하면 안정적 수비를 바탕으로 하되 순간적으로 기회를 포착해 득점을 내는 역습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KIC 전력의 기본이 되는 리서치 조직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직 운영과 관련해서는 외부 입김을 철저히 배제하는 대신 내부 견제와 사후 평가 시스템은 강화할 계획이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은 철저히 보장하되 CRO(리스크담당 최고책임자)를 통한 내부 견제 기능을 높이고 리서치 조직을 기금운용본부에서 독립시켜 중립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안 사장은 KIC를 한국의 대표 자산운용 기관이자 인재양성소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KIC를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사관학교로 만들겠다는 것. 그는 “KIC 인력 150명 중 130명이 서울에 있다”며 “뉴욕과 런던 등 실제 ‘플레이’가 이뤄지는 시장에 더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에는 “자기 전문성이 없는 기관에 내려가는 것이 낙하산 아니냐”며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인 그는 21년 공직생활 중 대부분을 재무부 국제금융파트와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국제금융센터에서 근무했다고 강조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