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논쟁 불붙는다] 정부 "경기 살릴 실탄 쏴줘야" vs 한은 "부양 효과 거의 없을 것"
한국이 일본식 장기복합 불황에 빠질 것인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기준금리 논쟁의 이면에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물가의 원인과 내년 경기 전망에 대한 정부와 한국은행 측의 시각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수요 부진이 구조적이냐, 일시적이냐를 두고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박근혜 정부 첫해에 겨우 회복세에 들어선 경기에 한은이 확실한 ‘실탄(금리 인하)’을 쏘아주기를 원하는 정부의 절박함과 무슨 일이 있어도 통화신용정책의 자율권은 사수해야 한다는 한은 측의 방어심리가 팽팽하게 맞서 있는 형국이다.

○여전히 저성장 국면 vs 경기 회복 단계

[금리논쟁 불붙는다] 정부 "경기 살릴 실탄 쏴줘야" vs 한은 "부양 효과 거의 없을 것"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5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6개월째 2.5%를 유지하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달 금통위에서 “내수 관련 지표가 일시 부진했으나 수출이 호조를 이어가면서 경기는 추세를 따라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잠재성장률과 실질 성장률 사이의 격차인 국내총생산(GDP)갭이 내년 말이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내년 하반기께 금리를 올리면 올렸지, 지금 섣불리 내릴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한은 측 입장이다.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도 아주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실질금리가 사실상 제로 상태인 만큼 금리를 낮춰도 기대한 만큼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이 경기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유동성 함정(금리를 낮춰 돈을 풀어도 투자와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에 빠지면서 경기가 더 위축됐다는 것이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도 한은 측을 거들고 있다. 그는 “저물가가 지속되면 금리를 내리기보다는 올리기가 더 어려운 만큼 경기확장 국면에 대비해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내에서는 전기 대비 분기 성장률이 2분기 연속 1%대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의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려 성장률 수준을 지금보다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에는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동조하고 있다. 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하루빨리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며 “내년 봄 미국의 출구전략 가동 때 한은이 일각의 시나리오대로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올리면 경기 회복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경계감을 표시했다.

○디플레 조짐 vs 가능성 없다

정부는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소비자물가가 한은이 설정한 중기 물가목표범위인 2.5~3.5%의 하단에 위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한은은 물가는 항상 오른다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며 “내년에 물가가 오른다고 하더라도 2% 초반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금리인하 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18일 발표한 ‘최근 물가상승률에 대한 평가 및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낮은 물가상승세가 향후 거시경제의 점진적 회복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반면 한은 등은 최근 저물가는 공급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 만큼 오히려 금리인상 시기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분기별로 1%씩 성장하는데 이를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정부 논리를 반박했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 하반기는 2.9%로 연간 2.5%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은 내부에서조차 반론이 일고 있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저물가 원인이 내수의 추세적 위축, 자산시장 부진, 고령화 등 물가여건의 구조적 변화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화강세 심리해소 vs 외화유출 대비

금리 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부는 지금은 자본유출입보다는 외환시장의 원화강세 심리를 돌려놓는 게 더 시급하다며 금리 인하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은은 그러나 내년 초로 예상되는 미국의 양적완화 조기 축소(테이퍼링)가 환율 등 대외 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HSBC 관계자는 “미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에 의한 자본 이탈이 무질서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HSBC는 상반기까지는 기준 금리를 동결하고 내년 3분기에는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UBS는 내년 1분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내다봤다.

이심기/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