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카카오에만 의존하다간…한국 IT, 세계진출 꿈도 못꾼다"
“한국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시장에서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클리셰(cliche·상투적 표현)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해외 진출을 갈망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진짜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는 겁니다.”

핀란드 컨설팅회사 ‘레달’을 창업한 퍼 스티니우스 대표(사진)는 최근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한국 IT 벤처기업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여전히 내수 시장에만 집중해 규모가 작다”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프로세스를 글로벌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레달은 2010년 세워진 핀란드 컨설팅 회사다. 내부 인력을 파견해 기업에 심층 조언을 하는 아웃소싱 방식을 도입해 유럽에서 급성장 중인 이 기업은 지난 5월 서울에 두 번째 사무실을 냈다.

미국 UC샌타바버라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딴 스티니우스 대표는 광섬유 기술기업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이 있다. 맥킨지 액센츄어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벤처캐피털 회사도 두루 거친 기술 분야 전문가다.

그는 “최근 소프트뱅크가 핀란드의 슈퍼셀 지분 절반을 1500억엔(약 1조6000억원)에 사들였는데 그 배경에는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게임회사 겅호온라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슈퍼셀 게임을 겅호가 일본에 맞게 현지화하는 등 성공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이 이번 인수의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스티니우스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도 해외 기업과의 협업 확대를 통해 파트너십을 맺을 기회를 유심히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해외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절실함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은 내수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는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절실함이 덜하다”고 지적했다.

스티니우스 대표는 “핀란드에서 로비오, 슈퍼셀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회사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핀란드에는 네이버도 카카오도 없기 때문”이라며 “플랫폼 회사는 내수 IT 생태계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IT의 글로벌 진출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랫폼 회사 위주의 한국 IT 생태계 구조를 극복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자질로 ‘글로벌 네트워킹 구축’을 꼽았다. 스티니우스 대표는 “서울의 한 게임 유통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에게 들었는데, 해외 콘퍼런스에 나가도 항상 한국인끼리 함께 앉고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며 “사업 기회는 글로벌 문화에 바탕한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안으로 제시한 모델 중 하나는 해외에 먼저 진출해 한국에 역진출하는 방식이다. 그는 “정세주 대표가 창업한 헬스케어 모바일 앱 회사 ‘눔’이 대표적”이라며 “해외에서 강력한 네트워크와 글로벌 문화를 구축한 뒤 한국에 들어오면 현지화가 쉽고, 다른 아시아 국가 진출도 용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달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맥킨지 등 기존 컨설팅회사와 달리 고객사에 직원을 파견해 의사 결정에 깊이 관여하도록 한다.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무료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스티니우스 대표는 “돈만 주면 어느 회사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전통적인 컨설팅은 더 이상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스타트업이든 컨설팅 회사든 사업에 대한 깊은 ‘직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