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1시에도 정체 극심 > 수원 매탄동 삼성 디지털시티를 가로지르는 삼성로의 모습. 오전 11시인데도 막바지 확장 공사 탓에 정체가 심하다. 오른쪽으로 지난 6월 완공된 삼성전자 R5 빌딩이 보인다. 수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 오전 11시에도 정체 극심 > 수원 매탄동 삼성 디지털시티를 가로지르는 삼성로의 모습. 오전 11시인데도 막바지 확장 공사 탓에 정체가 심하다. 오른쪽으로 지난 6월 완공된 삼성전자 R5 빌딩이 보인다. 수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31일 오전 8시10분. 수원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일하는 삼성전자 김모 차장(40)은 속이 터졌다. 수원IC를 나와 공사 중인 삼성로로 접어들자 두 차선을 차지한 빨간 플라스틱통과 꽉 막힌 차량들이 앞을 막았다.

근무지 R4 빌딩이 훤히 보이는데도 앞차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차를 돌려 영통구청 쪽 영통문으로 우회했다. 수원IC에서 회사까지 3㎞가량을 가는 데 25분이 넘게 걸렸다.

수원 디지털시티 앞 삼성로(국도 42호선 원천동 삼성 삼거리~태장동 세계로 구간 3.12㎞) 확장 공사가 6년7개월 만인 오는 15일께 완공된다. 수원시가 삼성전자와 비용을 분담하기로 하고 토지 보상에 착수한 게 2007년 4월의 일이다. 이후 경기도의회 내 야당의 ‘삼성 특혜’ 시비, 알박기로 인한 보상 지연에 공사가 표류하며 수원에서 근무하는 삼성 임직원 4만여명은 7년 가까이 출퇴근 교통지옥을 겪어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고속도로 길이 5위, 국도 7위에 달할 정도로 길 잘 놓기로 소문난 한국이지만 ‘삼성 특혜’ 시비 앞에선 무력해진 탓이다.

○“삼성 앞 도로는 왜 닦아주나”

'국가대표 기업' 앞길 3㎞ 확장하는데 6년半 걸리는 나라
삼성로는 수원 디지털시티 1, 2단지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삼성이 2001년 R3(정보통신연구소), 2005년 R4(디지털연구소) 등 고층건물을 잇달아 지어 근무인원이 늘어나자, 경기도와 수원시는 2007년 왕복 4차선이던 삼성로를 왕복 6차선으로 확장키로 했다. 공사비 1400억원 중 경기도가 430억원, 수원시가 440억원을 대고 삼성이 530억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2009년 4월 착공했지만 이듬해인 2010년 중단됐다. 수원 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가 “삼성전자 임직원의 출퇴근길을 넓히는 특혜”라고 주장하자 경기도의회가 관련 예산을 삭감해서다. 야당 도의원들은 “혈세를 왜 대기업에 쏟아붓느냐”고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후 공사는 파행을 빚었다. 공사가 늦춰지며 경기도·수원시가 부담할 보상비가 올라가자, 시비는 더 커졌다. “삼성 측 부담은 왜 안 늘리느냐”는 것이었다. 수원시 등은 당초 보상비는 행정기관이, 공사비는 삼성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지난 6월 R5 입주식에 참석한 김문수 경기지사는 장호철 경기도의회 부의장에게 “삼성전자가 대한민국 간판기업인데, 앞길 진입로도 제대로 깔아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엔 꼭 길을 완공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도로 확장은 오는 15일 마무리된다. 이준하 수원시청 도로과장은 “도로 확장은 보상, 철거 등을 제외하면 실제 공사는 2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 수원시내 주요 간선도로 확장 공사는 5년을 넘은 경우가 없다. 가장 붐비는 수원역 앞 우회도로 3.8㎞를 신설하는 공사도 2단계에 걸쳐 이뤄졌지만 5년 만에 끝났다.

○외국에선 고속도로까지 놔줘

삼성전자는 본사가 있는 경기도와 수원시에 한 해 지방세만 2000억원가량을 낸다. 그러나 ‘삼성 특혜’ 시비가 일면서 공사 지연 사태가 빚어졌다.

이는 외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삼성전자가 해외에 나가면 앞다퉈 도로를 내주고, 부지를 제공한다. 베트남은 삼성전자 기존 박닌성 공장에서 새로 건설 중인 타이응우옌성 2공장까지 물류를 돕기 위해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들여 고속도로를 짓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중국 시안의 경우 공장 주변의 9개 도로가 최근 준공됐으며 산시성 정부가 나선 고속간선도로도 조만간 개통된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 특혜를 누린 적이 있을지 몰라도 최근엔 ‘다른 곳은 몰라도 삼성만은 안 된다’는 주장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도곡동 삼성본관 건설 무산 △장충동 신라호텔 증축 인가 불허 △자립형사립고 삼성고 건립 반대 등이다.

삼성은 내년 3월 충남 아산에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 자녀를 위한 삼성고를 세우기 위해 인가를 받았지만, 교육계의 반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삼성이 특권귀족학교를 만드는 건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포항제철고, 광양제철고, 하나고 등 임직원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학교는 많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신라호텔도 원래 증축을 추진했으나 서울시가 ‘남산 자연경관지구 내’라며 인가를 내주지 않아 무산됐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도 원래 본사 건물을 지을 자리였으나, 인허가가 무산돼 대신 주택을 지은 경우다.

수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