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원소 주기율표로 읽는 세상 이야기…'생각하는 사람'의 완벽한 자세가 가진 비밀은?
“원소들은 영원하다. 즉 빅뱅이 있은 직후에 만들어졌고,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지구에 머물 것이며,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지구 자체가 죽음의 행성이 된 이후에도 존재를 이어갈 것이다. (…) 모든 일은 역사에서 일어나고, 지리학에서 고유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원소들로만 물질적으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다. ‘모나리자’도 원소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의 물질은 원소들로 이뤄져 있다. 즉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원소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사실 문화적으로도 원소는 세계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서구인들은 황금(Au)에 대한 욕망으로 새로운 대륙을 찾았고, 진시황은 수은(Hg)을 불로장생의 힘을 가진 약으로 생각하고 마시다가 중독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든디스크’보다 많이 팔린 음반을 우리는 백금(Pt·platinum)을 뜻하는 ‘플래티넘 디스크’라 부르고, 위조지폐를 구분하기 위해 유로화에 사용한 형광염료에는 유로퓸(Eu)이라는 원소의 화합물을 사용하고 있다.

[책마을] 원소 주기율표로 읽는 세상 이야기…'생각하는 사람'의 완벽한 자세가 가진 비밀은?
대중 과학 저술가 휴 앨더시 윌리엄스의 《원소의 세계사》는 세계사를 이렇듯 원소의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주제는 힘, 불, 기술, 아름다움, 흙. 인류를 이끌어온 이 다섯 가지 주제의 문화사를 원소라는 소재로 꿰어낸 것이다. 말하자면 두툼한 ‘문화사(史)적 원소 주기율표’다.

두 번째 주제인 ‘불’에서 소개되는 황(S)은 재난과 정화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졌다. 황은 성서에서 총 열네 번 언급되는데, 이때마다 형벌과 파괴의 장면이 등장한다. 창세기의 타락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마치 비를 내리듯 유황과 불을 쏟아부어’ 멸망한다.

하지만 성서 속 유황과 달리 고대사람들은 황을 소독제로 사용했다. 오디세우스는 아내를 유혹했던 구혼자들을 무참히 죽이고 유모에게 “더러움을 씻고 불을 피워 집안을 정화해야겠으니 황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를 가진 분자 중 하나는 황화합물인 메틸메르캅탄인데 이는 냄새가 없는 천연가스에 첨가된다. 관에서 가스가 샐 때 쉽게 알아채기 위해서다.

‘기술’에 등장하는 납(Pb)이 로댕의 걸작 ‘생각하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불편해 보이는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조각 내부에 납으로 만들어진 평형추가 있기 때문이다. 납은 부식하지 않기에 영구히 보존된다. 그래서 예부터 시신을 보존하는 관으로도 사용했다.

이 밖에도 통상적으로라면 ‘Pl’이라는 원소기호를 붙여야 했던 플루토늄에 악취를 뜻하는 비속어인 ‘Pu’를 붙인 플루토늄 발견자 글렌 시보그의 이야기, 색채 예술에서 혁명을 일으킨 카드뮴(Cd)의 발견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즐겁게 읽으며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더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