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회사의 리더는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60)은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1985년 미국 P&G 사원으로 입사해 한국P&G 사장(1999~2001년), 해태제과 사장(2001~2004년)을 거쳐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영입됐다. 지난해 LG그룹에서 외부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된 데는 거침없는 사업 성장이 밑거름이 됐다. 취임 첫해인 2005년 LG생활건강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678억원, 704억원.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3조8962억원, 4455억원으로 불어났다. 실적 향상에 비춰 ‘차석용 효과’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거침없는 질주의 비결은 뭘까. 밖에서는 몰아붙이기식 ‘스파르타형 CEO 리더십’을 꼽을 것 같지만 사내 평가는 완전히 다르다.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라기보다는 “내가 도와주겠다”는 서포터형 리더십이라고 임직원들은 평가한다. 오랫동안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방적인 토의를 활용해 경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차 부회장은 “회사의 리더는 ‘리더’보다는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소비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편리함을 주는 게 회사의 사명이고, 그러려면 직원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를 다듬고 격려하는 것이 리더의 진짜 책무라는 것이다. 관리와 통제의 과거형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제 사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라 사원들과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논의해야죠. 건방지다 싶을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직원들로 충만해야 회사가 발전합니다.”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고 택시나 KTX를 이용해 혼자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그의 ‘탈권위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 “CEO가 간다고 미리 알리면 사업장이나 연구소에서는 의전과 자료 준비에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선 직원들이 놓치는 ‘디테일’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차 부회장의 주특기다.

2011년 12월 ‘엘라스틴’ 샴푸 모델로 11년간 활동했던 전지현 씨와 계약이 종료될 당시 얘기다. 마케팅팀 직원들은 전씨에게 그동안 방송된 모든 광고를 영상물로 편집해 선물로 보냈다. 우연히 이를 본 차 부회장은 무릎을 치며 “이 좋은 영상을 그냥 묵히기 아깝다. TV 광고로 내보내자”고 제안했다. 이 영상은 광고계에서 보기 드문 ‘전임 모델에 대한 헌정 광고’로 화제를 뿌리며 엘라스틴을 새삼 주목받게 했다.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를 3대 축으로 하는 LG생활건강에서는 해마다 수십~수백종의 신제품이 쏟아진다. 차 부회장은 새 상품의 이름부터 향(香), 디자인까지 직원들과 토론하고 상의한다. 지난해 LG그룹 창립 65돌을 기념해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1947년 만들었던 ‘럭키크림’을 재출시한 것이나, 옷을 하루만 입고 빠는 사람이 늘어나는 점에 착안한 ‘한입세제’ 등은 그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해 히트한 상품이다. 올초 내놓은 남성 화장품 ‘까쉐’ 등도 개발 단계부터 차 부회장이 공을 들인 ‘작품’이다. 완제품이 나오기 전에 자신이 직접 발라보고 느낌을 전달하는 등 세세한 임상시험(?)을 거쳤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CEO가 너무 작은 부분까지 챙기면 직원들이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강조해 밝혔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직접 제품을 써 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건 소비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제품을 만드느라 고생한 직원들을 격려하고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북돋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명동, 홍대, 가로수길과 전통시장, 백화점을 수시로 찾는다”며 “사람들의 표정, 눈빛부터 옷차림, 메이크업까지 모든 것을 주의깊게 관찰한다”고 말했다.

차 부회장의 경영성과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인수합병(M&A)이다. 코카콜라음료(2007년) 다이아몬드샘물(2009년) 더페이스샵(2010년) 해태음료(2011년) 바이올렛드림, 일본 긴자스테파니(2012년)·에버라이프, 캐나다 후르츠앤드패션(2013년) 등 잇단 M&A는 사세를 키운 핵심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몇 달에 한 번꼴로 M&A가 이어졌지만 LG생활건강은 ‘승자의 저주’에 빠진 적이 없다. 차 부회장은 “3~5년 안에 기존 브랜드 이상의 수익성에 도달할 수 있는 회사를 적정 가격에 인수하는 것이 철칙”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토 단계부터 인수팀을 구성해 회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수 뒤 3개월 안에 미리 세워둔 정상화 과제의 80%를 이행(→'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이유)한다”고 설명했다. 인수 뒤 경영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해 새 사업이 조기 정착하는 데 초점을 둬왔다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차 부회장 취임 이후 매출이 33분기째, 영업이익은 35분기째 연속 성장(전년 동기 대비)하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올 3분기엔 분기 단위로 사상 최고 매출(1조1518억원)을 올렸다. 하지만 차 부회장은 “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자세로 경영을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 맹자의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산 게 장수 CEO의 비결이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