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제품운반(PC)선을 건조작업 중인 경남 사천 SPP조선소. SPP조선은 틈새시장인 PC선을 공략해 올해 수주를 크게 늘렸다. SPP조선 제공
석유화학제품운반(PC)선을 건조작업 중인 경남 사천 SPP조선소. SPP조선은 틈새시장인 PC선을 공략해 올해 수주를 크게 늘렸다. SPP조선 제공
“정말 조선 경기가 살아난 게 맞는가 봅니다. 가격을 깎으려는 발주는 아예 받아주지를 않으니까요.”(이봉철 SPP조선 전무)

지난 4월 STX조선해양이 채권단관리를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중소형 조선사들의 회생은 쉽지 않아 보였다. 현대중공업 등 대형사들이 물량을 싹쓸이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 중소형 조선사들의 구조조정 등으로 수주가 잇따르고 있다.

○사천 SPP조선의 ‘틈새 성공’

경남 사천 SPP조선에 들어서자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는 소리로 귀가 먹먹해졌다. 가로 300m, 세로 90m 크기의 도크에는 5만t급 중형과 10만t급 대형 석유화학제품운반(PC)선이 한 척씩 건조되고 있었다. 건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말에도 근무하고 있었다. 수주 물량이 쏟아져 납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 조선소는 올 들어 지금까지 총 36척의 PC선을 수주해 2016년 상반기까지 일감을 확보했다. 지난해 전체 수주(27척)보다 많다. 황찬국 SPP조선 생산기획 부장은 “수주 예약까지 모두 차서 도크를 빨리 비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도크에서 PC선을 조립해 바다로 내보내는 데까지 80일 걸리던 것을 60일로 단축했다”고 말했다.

가격 할인을 해주며 수주하던 작년과는 정반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SPP조선 관계자는 “석 달 전까지만 해도 3400만달러 하던 중형 PC선 한 척을 이제는 3700만달러 이상 줘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전했다. SPP조선은 컨테이너선 등 다양한 선박을 만들다가 2010년 채권단관리에 들어가면서 틈새시장인 PC선에 집중했다.

○통영 성동조선의 뚝심 결실

경남 통영 성동조선해양에서는 완성을 앞둔 중형 컨테이너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절단공장이 조용한 것을 비롯해 큰 활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 수주가 5척에 그쳐 일감이 없기 때문이다. 수주가 적었던 것은 시황 침체 속에 ‘저가 수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양수 성동조선 영업팀 상무는 “도크를 놀리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저가 수주는 적자만 키우는 마약이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벌써 30척(15억달러 규모)을 수주했다. 선박을 수주하면 보통 1년 정도 설계한 다음 건조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직 조선소에서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크를 비워둔 성동조선은 시황 개선과 더불어 오른 가격으로 대거 일감을 따올 수 있었다. 오은상 수출입은행 성동조선 경영관리단장은 “머스크탱커로부터 최근 중형 PC선 등 8척을 한꺼번에 수주하는 등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회생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채권단관리에 들어가느라 수주를 제대로 못 한 STX조선해양 등 몇몇 곳을 제외하고 많은 중소형 조선사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의 회생은 경제 전체로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은 도장 용접 등이 많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이어서 고용유발 효과가 자동차나 반도체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형사까지 살아나면서 조선업 바닥은 확실히 지났지만 아직 대세 상승기라고 볼 수는 없다”며 “여전히 침체인 해운 경기의 회복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천·통영=김대훈/서욱진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