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내 남자의 향기는 뇌가 구분한다
남성 6명이 사흘간 입은 티셔츠와 깨끗한 셔츠, 염소표백제나 정향유 냄새를 입힌 셔츠 등을 상자에 넣고 밀봉한 뒤 작은 구멍을 통해 여성들에게 냄새를 맡고 가장 함께하고 싶은 냄새를 고르도록 했다. 남성의 체취에서 발산하는 페로몬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실험하는 것임을 여성들은 모르게 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모든 여성이 평균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냄새는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냄새는 여성들이 지닌 DNA의 한 부분인 인간백혈구항원(HLA) 유형과 관련이 있었다. 자신의 HLA와 너무 비슷하거나 너무 다른 유형은 거부했다. 이 탐지 능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여자들은 자기 것과 HLA 유전자가 단 하나만 다른 남자들의 체취도 구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일은 모두 뇌가 해낸다.

《브레인 센스》는 뇌와 감각기관의 관계를 다룬 뇌과학 책이다. 인간의 감각은 어떤 과학적 원리로 작동하는가, 감각 기관과 뇌는 어떻게 정보를 인식하고 소통하는가를 소개한다. 단순한 이론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각 분야 권위자들을 직접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곁들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사는 27세 청년 시인 스티븐은 선천성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몇 해 전 인공 달팽이관 이식을 받아 보청기 없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이식 수술이 성공한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보청기를 달고 산 덕분에 뇌가 나중에 접한 음향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다. 뇌의 음향처리 중추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50대에 암으로 유방절제술을 받았던 80대의 미라는 지금도 누르는 듯 얼얼한 감각을 느낀다. 헛통증, 즉 환상통이다. 뇌에서 특정한 신체 영역을 담당하던 영역이 신체 부위를 잃은 후 인근 다른 영역과 합쳐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손을 절단한 환자는 얼굴을 건드리면 손을 건드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저자는 뇌는 평생에 걸쳐 변화하고 고정불변의 현실은 없다고 강조한다. 뇌는 오래된 회로가 손상되면 그 임무를 넘겨받은 새로운 회로를 짠다. 이 때문에 똑같은 환경에서도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맛보는 것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 책은 뇌와 관련된 다양한 의문을 풀어준다. 냄새가 말과 그림보다 옛날 기억을 잘 불러오는 이유, 신생아의 눈을 절대로 가려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 등을 소상하게 들려준다. 오른손잡이인데도 왼손이 더 잘하는 분야, 게이 남성이 남성 페로몬에 대해 이성애자 여성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알려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