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 가입자 1만3000명 '비과세 박탈'
정부가 비과세 혜택을 앞세워 야심차게 출시한 재형저축 가입자 1만3000여명에 대해 소득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늦게 비과세 혜택을 없애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재형저축 출시에 급급해 가입자들의 소득 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행정 절차상의 실수로 애꿎은 재형저축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재형저축을 판매한 은행 등 금융회사들에 소득 요건에 맞지 않는 사람 1만3000명의 명단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내년 2월 해당 가입자의 계좌를 자동 해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가입요건 확인 제대로 안해

정부가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은 재형저축의 가입 요건 중 소득에 관한 부분을 가입자와 금융회사에 정확히 알리지 않은 탓이 크다.

재형저축에 가입하려면 근로소득만 있을 경우 직전연도 총급여가 5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하지만 근로소득 말고도 이자·배당소득, 임대소득, 연금소득 등 기타소득이 있는 사람일 경우 이들 모두를 합친 뒤 각종 소득 공제금액을 뺐을 때 3500만원 이하여야만 재형저축에 가입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3월 재형저축 출시 당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만으로도 재형저축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은 가입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떼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소득 부분만 확인이 될 뿐, 다른 금융·임대소득 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정부는 원래 세무서나 홈택스 웹사이트에서 발급받는 소득확인증명서를 가입 서류로 정했는데 출시 당시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시방편으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도 가입서류로 인정했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재형저축 출시 당시 국세청 홈페이지가 접속 폭주로 다운되고 각 세무서도 행정 인원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관련 민원이 은행으로 쏟아졌다”며 “이번에도 가입자 1만3000명에게 관련 비과세 해지 내용을 어떻게 통지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은행들 대책마련 고심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해지 대상 가입자들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금융당국은 내년 2월 이후엔 이들 가입자의 재형저축 계좌를 해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득요건이 맞지 않으면 의무적으로 해지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상자들이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라고 통보했으면 가입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와서 해지하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고객들이 행정상의 실수로 피해를 봐도 불만은 은행으로 돌아올 수 있어 자체적으로 적정금리를 책정해 고객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다만 재형저축보다도 낮은 금리를 주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