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불타는 금요일 밤 젊은이들의 성지(聖地) 홍대 앞. 뜨거운 열기만큼 도수가 높은 독주나 폭탄주가 즐비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음주 취향은 생각보다 쿨하다. 적당한 도수에 맛과 멋이 있는 칵테일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를 중심으로 ‘모히토’, ‘예거밤’ 같은 칵테일 열풍이 불면서 베이스로 쓰이는 화이트 스피릿도 인기 덤에 올랐다. 위스키와 코냑으로 대표되는 브라운 스피릿과 달리 화이트 스피릿은 무색의 투명한 술이다. 보드카, 럼, 진, 데킬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Biz스토리 (27)] 홈믹싱주 '맥키스' 탄생 스토리…“줏대 없는 술로 주류(主流)를 꿈꾸다”
소주와 맥주 중심의 국내 주류(酒類) 시장에서 화이트 스피릿은 시장 규모가 작은 비주류(非主流)에 속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행이 만들어 지는 곳은 언제나 비주류였듯 일찌감치 화이트 스피릿의 가능성을 엿본 이가 있었다. 올해 초 ‘맥키스’를 출시한 조웅래(55) 더맥키스컴퍼니(구 선양)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조 대표는 스스로를 주류 업계의 비주류라 칭한다. 충청도에 연고를 둔 회사지만 정작 대표인 그는 경상도 토박이다. 이력 또한 주류업과 거리가 멀다. 90년대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으로 대박을 친 ‘700-5425’의 창업자에서 주류 업체 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맥키스를 통해 진정한 주류로 비상하길 꿈꾼다는 조 대표. 서울 중구 순화동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경직화된 한국 음주 문화…“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자”

조웅래 대표는 소문난 술꾼이다. 학창 시절부터 막걸리 마시기 대회에 나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어떤 술이든 가리지 않고 매일 1~2병씩 마시는 게 일상이다. 그런 그가 주류 회사 대표가 됐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렇게 술을 좋아하더니 결국 술장사까지 하는구나”였단다.

누구보다 술을 즐기지만 한국의 음주 문화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음주 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에 대해서다.

[Biz스토리 (27)] 홈믹싱주 '맥키스' 탄생 스토리…“줏대 없는 술로 주류(主流)를 꿈꾸다”
“사회는 유연해지고 개인주의화 되는데 음주 문화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스를 중심으로 잔을 돌리며 마시는 데 익숙하죠. 사람마다 취향이나 주량은 다른데 술을 언제나 소주 아니면 맥주고요. 그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회 트렌드에 맞는 문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주 문화에 대한 생각은 화이트 스피릿에 대한 구상으로 발전했다. 화이트 스피릿은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어서다. 희석시키는 정도에 따라 도수를 조절할 수 있는 점도 화이트 스피릿의 매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맥'을 즐겨 먹는 이유 중 하나가 중간 대 도수의 술이 없다는 겁니다. 칵테일은 낮게는 4~5도에서 높아도 20도 내외죠.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음주 문화에 적합한 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성을 중요시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에도 맞고요.”

6년 전 조 대표는 그렇게 화이트 스피릿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만 해도 화이트 스피릿은 전체 주류에서 1% 남짓한 점유율에 수입 업체들이 장악하던 상황이었다.

◆ '줏대 없는 술' 맥키스...무색무취에 청량감은 살려

칵테일의 베이스가 되는 술을 만들기 위해선 ‘줏대 없는 맛과 향’을 내는 게 핵심이다. 어떤 재료와 섞더라도 조화로운 맛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맥키스도 이런 이유에서 무색무취라는 콘셉트로 출발했다.

“무색무취를 다른 말로 하면 제조 과정에서 만들어 질 수 있는 잡내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죠. 맥키스도 탄내나 누린내를 잡기 위해 증류 방식을 차별화시켰습니다.”

[Biz스토리 (27)] 홈믹싱주 '맥키스' 탄생 스토리…“줏대 없는 술로 주류(主流)를 꿈꾸다”
맥키스의 주 원료인 보리는 발효를 마치고 증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조 대표는 80℃에서 직접 가열하는 전통 방식 대신 간접 가열 방식을 적용했다. 전통적인 방식은 원료가 강한 열에 튀거나 눌러 붙어 탄 맛을 낼 수 있어서다. 간접 가열을 택한 대신 압력을 낮춰 원료는 40~50℃에서 끓게 된다.

적당한 도수를 찾는 것도 관건이었다. 다양한 연령층이 즐기려면 술 자체의 도수가 너무 낮아서도, 높아서도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20도와 30도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여러 시도 끝에 결정된 도수는 21도. 재료와 잘 섞이면서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도수라는 게 조 대표의 설명이다.

“저는 스트레이트로, 아내는 매실원액을 넣어 아주 가볍게 마십니다. 자녀들은 오렌지 쥬스나 콜라를 섞어 먹고요. 21도이기 때문에 주량이나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름도 맥키스라고 지었습니다. ‘맥’은 원료인 보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의미거든요.”

줏대 없는 술을 목표로 했지만 청량감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다른 술보다 산소 함량을 3배가량 높였다.

“술에 들어간 산소 함량이 보통 8ppm이라면 맥키스에는 35ppm이 들어있습니다. 산소 함량이 높은 소주 ‘오투린’을 개발할 때부터 축적해 왔던 산소 용전 기술을 활용했죠. 산소 함량이 높으면 청량감이 살아나고 취해도 빨리 깨는 장점이 있습니다.”

◆ 유통망 뚫은 역발상…“제품이 아닌 콘텐츠로 승부하라”


맥키스를 개발한 뒤에는 유통망 확보가 발목을 잡았다. 신제품에 사활을 걸고 사명까지 ‘더맥키스컴퍼니’로 바꿨지만 낮은 인지도 탓에 유통망 뚫기는 쉽지 않았다. 해외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원탁 문화가 발달해 술자리에서도 둘러 앉아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고도주에서 저도주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 가능성을 발견했죠. 시장 테스트를 해보니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더군요. 결국 4년을 쏟아 부었던 신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재기의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조 대표가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

“5425가 한 때 유행으로 끝났듯이 SNS도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그 파급력이 대단하더군요.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적절하고요. 제품이 아닌 콘텐츠로 유통망을 뚫어보자는 역발상을 한 거죠.”
[Biz스토리 (27)] 홈믹싱주 '맥키스' 탄생 스토리…“줏대 없는 술로 주류(主流)를 꿈꾸다”
조 대표는 인기 개그맨 신동엽을 모델로 채용, 그의 익살스런 캐릭터를 살린 광고를 제작했다. 일단 콘텐츠가 재밌어야 널리 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광고 영상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소비자들이 직접 만든 패러디와 시음 방법에 대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홈믹싱주’라는 새로운 개념도 만들었다. 클럽이나 파티 등 특별한 장소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닌 집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이지(easy) 칵테일’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맥키스로 누구나 바텐더가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아이스크림, 화채, 에너지 음료, 우유 등 취향대로 섞으면 나만의 칵테일이 되죠. 요즘 유행하는 더치 커피를 섞으면 근사한 손님 접대용 술도 됩니다.”

SNS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자 유통망도 열렸다. 이마트를 시작으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전국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 맥키스를 들여놓게 됐다.

◆ 급성장하는 화이트 스피릿 시장…수입 대체 효과도 기대

화이트 스피릿 시장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3년 사이 매년 20~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이마트 전체 양주 매출 중 믹싱주의 비율은 52%를 차지했다. 2년 전(28%)보다 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국내에 출시된 화이트 스피릿 브랜드도 100여 개가 넘는다. ‘앱솔루트’, ‘스미노프’, ‘스레이쿠스’ 등 수입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토종 화이트 스피릿인 맥키스가 수입 대체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초기 판매 성적은 고무적이다. 지난 4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40만 병이 팔렸고, 연말까지 60만 병을 돌파할 것으로 회사는 내다보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도 지난해보다 15% 증가한 1200억원으로 전망했다.

조 대표는 맥키스의 인지도 상승과 유통망 확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한 차례 실패를 맛 봤던 해외 시장 공략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음주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한 해 몇 병을 팔겠다는 목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트렌드에 맞는 음주 문화를 생각하며 만든 제품이니까요. 두고 보세요. 재밌게 만들어서 적당히 마시는 술자리에는 항상 맥키스가 있을 겁니다. 융화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마시는 술도 그들을 닮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 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사진= 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now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