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에 한 곳씩 문을 닫는다’는 음식점 창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영세식당 주인에게 맛집 소개를 미끼로 접근해 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예비창업자들이 가장 손쉽게 뛰어드는 음식점은 이미 2006년 전국적으로 40만개를 넘어서 포화상태다. 매년 휴·폐업하는 식당만 20만개를 넘어설 정도로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학교에 책을 기증하면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속여 도서 기부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케이블 방송사 외주제작업체 대표 김모씨(32)를 구속했다고 10일 발표했다. 프로그램 심사 때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김씨에게서 수천만원을 받은 임모씨(43) 등 케이블 방송사 직원 두 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해 5월부터 올 8월까지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방영한 김씨는 “졸업한 모교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책을 기부하면 방송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속여 479개 식당업주에게서 모두 8억7490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출판사 창고에 쌓여 있던 자기계발서와 동화책을 권당 1400~2400원에 사들여 학교마다 100~200권씩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책을 사는 데 들인 비용은 식당업주들에게 받은 돈의 10% 수준인 8000여만원이었다.

2010년 10월 외주제작업체를 차린 김씨는 방송제작 경비를 모두 부담하는 조건으로 케이블 방송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처음에는 방송제작비와 방송저작권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으나 여의치 않자 도서기부금이라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는 가로챈 돈을 결혼 비용과 외제 차 등을 구입하는 데 탕진했다. 김씨의 범행은 방송 출연을 위해 기부금을 내야 하고 전액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섭외 전화를 수상히 여긴 식당 주인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외주제작업체가 제작 경비를 전액 부담하거나 케이블 방송사에 송출료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는 관행이 만연해 외주제작업체로선 협찬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앞으로 추가 수사를 통해 또 다른 피해 사례가 없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