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직후 출범한 60년 전통의 동양그룹이 존망의 위기에 놓였다. (주)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이어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가 사업 부진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줄줄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그룹 해체 가능성이 커졌다. 1957년 설립된 동양세멘트공업이 그룹의 모태라지만, 고(故) 이양구 창업주가 1953년 풍국제과판매를 세워 본격 사업에 나선 것을 기점으로 잡으면 올해로 61년째다.

동양그룹의 위기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서 기업 수성(守城)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해와 올해 웅진과 STX에서 보듯 상당수 기업은 한 세대 30년도 버티지 못하고 위기를 맞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지금 승승장구하지만 다음 세대엔 어떤 모습의 회사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영속하는 기업의 비밀을 푸는 작업은 경영학의 오랜 숙제다. 장기간 자신의 시장지위를 지키고 있는 GE, 지멘스, 듀폰 등의 대를 이은 성공 스토리는 100년 기업을 꿈꾸는 최고경영자(CEO)들의 한결같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왜 세계적으로도 100년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할까.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시사포인트1 위기는 내부에서 온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복잡성’ 문제를 관리하라

130년 달려온 GE…언제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봤다
많은 국제경영 연구에 의하면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이머징마켓에서 기업집단(business group)시스템의 장점은 성장에 필요한 자본과 인재를 조달할 수 있는 내부 시장을 제공해준다는 데 있다. 한국의 기업집단시스템이 가진 장점을 얘기할 때 이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 운영될 경우, 즉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무모하게 진출하거나 능력있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중용(重用)하는 경우 기업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동양그룹이 지금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은 2011년부터 어느 정도 예견돼왔다. 신용등급은 지난해부터 이미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그동안 위기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계열 증권사 등 내부 금융시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이로 인해 그룹을 새롭게 정비할 시간을 허비한 채 전체 리스크를 확대시켜왔다고 볼 수 있다.

동양그룹은 외환위기 후에 쓰러진 많은 기업집단의 모습과 닮아 있다. 공병호경영연구소의 공병호 소장은 ‘대한민국 기업흥망사’라는 책에서 그동안 실패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100년 기업의 조건을 다양한 각도로 살폈다.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끝내 무너진 진로, 최고경영자의 독주 속에 조각난 대우, 사람의 장벽을 물리치지 못해 쓰러진 새한, 빠른 유통망 확장 속에 조직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뉴코아 등은 결국 내부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에 의지한 채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갖추지 못한 결과였다. 즉 기업 성장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복잡성을 관리하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케빈 케네디와 메리 무어는 ‘100년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장수기업은 기업이 시장에서 굳건히 뿌리내리면서 직면하게 되는 수많은 위험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극복해내고, 이 과정은 조직 내 수많은 리더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다고 얘기했다.

기업은 성장과 수익 확장을 위해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이고 여러 시장을 공략하게 되는데, 이에 따라 다양한 복잡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장수기업이 되는 것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복잡한 조직구조, 즉 수많은 기능 중심 조직과 비즈니스 조직이 우선순위에 따라 최적화될 때 가능하다.

130년 달려온 GE…언제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봤다

시사포인트2 자만과 방심이 화를 부른다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 상정하고 대비하라


1987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1917년 당시 미 경제를 이끌던 100대 기업의 상황을 추적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39개 기업만이 생존했고, 그중에서 100대 기업의 위상을 유지한 기업은 18개에 불과했으며 시장지위가 개선된 기업은 단 2개, GE와 코닥뿐이었다. 지금은 코닥도 망했으니 결국 단 1%의 기업만이 10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한 셈이다.

사실 장수기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1982년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출간되면서 시작됐다.

1961년부터 1980년까지 높은 성과를 달성한 43개 미국 기업의 성공요인을 심층 해부한 결과물로, 이들의 공통 배경을 찾는 접근 방식은 이후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가장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도 이후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1984년 11월 비즈니스위크는 ‘지금 누가 초우량 기업인가?’란 기사에서 책에 소개된 43개 초우량 기업 중 3분의 1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단기 성과를 기준으로 하면 초우량 기업이 몇 년 후 망해버리는 난감한 결과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해 영속기업 선정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도입한 연구자가 짐 콜린스다. 1994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필두로 2001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2011년 ‘위대한 기업의 선택’ 등 일련의 연구를 통해 18개 비전 기업, 11개 위대한 기업, 7개의 10× 기업(동종 업계의 주가를 최소 10배 이상 앞질렀다는 의미)의 성공 비결을 연구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들 연구와 맥을 같이하면서도, 성공보다는 실패라는 정반대 관점에서 접근한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의 내용이 더 흥미롭다.

콜린스는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를 설명하면서 ‘조금씩 싹트는 자만심→원칙없는 욕심→위기에 대한 부정→허황된 구원자 찾기→사라진 희망과 몰락’ <강한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 등의 키워드를 쏟아냈다. 즉, 몰락의 근본 원인은 자만심에 기인한 원칙없는 욕심이었고, 파멸의 전조는 위험을 부정하는 리더의 자세였다.

콜린스는 성공과 실패로 나눠지는 결정적 갈림길에도 주목했다. 그는 갈림길에서 성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힘든 시기에 높은 성과를 내야 하는 어려움은 물론 경기가 좋을 때 자제하는 인내가 필요하며 이에 따른 불편함도 감내해야 한다고 했다. 또 최고경영자의 피해망상도 긍정적으로 봤다.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비하는 자세는 기업에 예기치 않은 사건과 불운이 생겨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충격 완충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무너진 적지 않은 기업 모두 콜린스의 모델로 설명된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도움말 주신 비즈&라이프 자문위원
130년 달려온 GE…언제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