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자와 나오키
일본 TBS TV가 매주 일요일 밤 방송하는 ‘한자와 나오키(半澤直樹)’라는 드라마에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다. 엊그제 7회 방송분에는 순간 최고 시청률이 34.5%까지 올라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선 15%만 넘으면 드라마로서는 대성공이다. 2년 전 ‘가정부 미타’가 마지막회에서 순간 최고 시청률 40%를 보였지만 20%를 넘기 어려운 것이 일본 방송드라마의 현실이었다. 한자와가 미타의 시청률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당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다. 원작 소설은 불과 두 달 만에 30만부 이상 팔렸고 관련 캐릭터 상품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은행원 출신 작가 이케이도 준의 비즈니스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의 줄거리는 어떻게 보면 일본적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이라고 할 만하다.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시기 대형은행에 입사한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상사로부터 5억엔 융자사고의 전 책임을 떠맡았지만 그 부조리에 불굴의 근성으로 맞서 그를 응징한다는 것이 스토리의 얼개다. 이어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한 은행 상무의 비리를 찾아내면서 드라마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중이다. “당하면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 배(倍)로 갚아주겠다”는 주인공의 말에 일본인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궁금한 것은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담당 프로듀서마저 그 원인을 알지 못하겠다고 한다. 일본 칼럼니스트들은 호기(好期)를 만난 것처럼 다양한 해설을 풀어댄다. 한 평론가는 한자와 현상이 일본 기업사회의 혁명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른 칼럼니스트는 업적지상주의에 찌들어 있는 일본 직장인들의 소리없는 외침이라고 말한다. 자신에 닥친 각종 악운에 도전정신으로 맞서는 주인공의 작은 무용담이 지금 일본인들이 바라는 영웅상이라고 미화하기도 한다. 물론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사카이 마사토의 열정적인 연기가 시청자들을 흡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당하면 되갚아주겠다’는 발상은 일종의 억눌린 심리다. 20년이라는 긴 경기하강에 신음해온 일본인들에게는 주인공의 행동이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2011년 일본 대지진 때 보여준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침착성과 인내 용기 절제성은 세계가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한자와가 보여주는 일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만과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치밀하게 되갚아 나가는 주인공이다.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한자와 드라마는 분명 종전과는 다른 일본인을 보여주고 있다. 새 일본인의 탄생을 말하는 것인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