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 만능열쇠' 환상을 버려야
최근의 한국 경제는 위기의 짙은 먹구름에 덮여 있다. 이번 위기는 단기간에 헤어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새로운 변종이다. 지난 수년간 한국 경제는 소비성향이 높은 맞벌이 여성들의 사회진출 가속화를 통해 성장의 한 축인 소비지출을 지탱해 왔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잃고, 중산층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던 외환위기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다. 주거비용에, 자녀를 키울 때 짊어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과 경기침체, 고용 불안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해법을 찾는 데에 과거와 다른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모든 문제를 정부가 해결한다는 ‘만능열쇠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올 상반기만 해도 재정적자가 10조원에 달한다. 이는 예고된 재앙이다. 간판기업들은 어닝 쇼크가 시작됐고, 상장기업과 코스닥기업들의 35%가 적자이며, 자영업자나 가계들이 불황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대규모 세수부족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보면 2013년 예산은 6개월 앞도 보지 못한 사실상의 분식예산이었다. 정부와 국회가 성장둔화와 이에 따른 세수감소의 조기경보에 실패한 셈이다. 복지해결 수단도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을 끌어들여 다양화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아파트나 상업용 건물을 신축할 때는 보육시설을 지어 기부채납하도록 의무화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을 맡아 보육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을 제안한다. 결혼한 직장여성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보육이다.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곳이 없고, 월급은 보육 비용을 부담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로 인해 소비주도층인 직장여성들마저 지갑을 닫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부가 아닌 시장을 통해 30~40대 맞벌이 부부의 가처분소득 수준을 지켜주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려면 소비와 기업투자가 늘어야 한다. 특히 가계소비는 고용과 가처분소득이 보장돼야 한다.

실제로 최근 보육시설을 설치한 한 건설회사가 지은 아파트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있다고 한다. 보육의 편의성이 거주지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보육인력도 50~65세 사이의 여성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건설회사나 빌딩 소유주에게는 용적률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보상하면 모두가 이기는 윈윈게임이 될 것이다.

둘째, 주택임대시장에 은행 등 금융회사를 직접적으로 참여시켜 주택거래 절벽 문제와 계속되는 전·월세 문제를 해결해 렌트 푸어들의 가처분소득 감소를 막아야 한다. 이제는 주택시장도 임대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문제 해결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세제 등 대부분의 방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나 작동 가능하다.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최근 은행예금은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이 중 많은 부분이 단기 대기성 부동자금이다. 경제가 회복될 때는 골치 아픈 뇌관이 될 수 있다. 금융회사 경영에도 먹구름이 드리워 있다. 금융회사들은 자산운용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다. 특히, 국내 은행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은행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의식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AIG 등 미국의 일부 금융회사들도 임대용 주택사업에 대한 직접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넘쳐나는 부동자금도 해결하고 공공성 있는 금융회사의 참여로 전·월세 공급물량 증가는 물론 무리한 전·월세 인상요구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정책 당국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171억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쓰러져가던 제록스를 현장중심 경영으로 구해냈던 앤 멀케이 전 회장의 사연이다. 그는 취임 초 자금지원 및 경영 코칭을 부탁하기 위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을 찾아갔다. 버핏은 그에게 “외부전문가보다 고객과 직원들의 의견을 우선시하라”고 조언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이 조언이 멀케이 회장의 성공요인이 됐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도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정조 <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