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200년 이상 논란을 빚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예경 제공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둘러싸고 200년 이상 논란을 빚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 /예경 제공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6)를 종교재판까지 몰아세운 그림 ‘옷을 벗은 마하’는 200년 이상 논란거리였다. 그림의 주인공에 대해 고야가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라며 끝내 함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림의 주인공이 명문귀족 가문의 ‘알바 공작 부인’이라는 설과 재상이었던 마누엘 고도이의 애인 ‘페피타 츠도’라는 설이 그럴 듯하게 떠돌았다. 고심 끝에 알바 가문에서는 1945년 알바 부인의 유해를 발굴해 법의학자들에게 진실 규명을 의뢰했지만 실패했다.

200년 이상 불명예스런 소문에 시달려온 알바 가문의 고민은 지난해 해결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 멤버이자 한국 법의학계의 태두인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88)가 지난해 10월 충남대에서 열린 제36차 법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마하의 실제 모델은 알바 부인이 아니라 츠도라고 결론지은 것. 문 교수는 그림 속 얼굴의 생체 정보를 분석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책마을] 그녀는 누구인가?…법의학으로 200년 비밀을 풀다
《법의학이 찾아내는 그림 속 사람의 권리》는 문인이나 예술가의 창작물과 창작 흔적 등을 탐구해 진실을 밝히려는 ‘법의탐적론(法醫探跡論)’을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고야를 비롯해 쿠르베와 휘슬러, 들라크루아, 칼로,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고흐, 달리, 앙소르, 얀센 등 예술사의 한 획을 그은 유명 작가들이 남긴 그림과 자료를 통해 예술을 법의학적 시선으로 해석한다.

다윗왕이 아름다운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방 위험지대로 보내 죽게 하고 밧세바를 임신시킨 사건은 여러 화가들의 그림 소재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을 비롯해 앙리 팡탱 라투르, 얀 스테인, 윌렘 드로스트, 페테르 루벤스 등 수많은 화가들이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저자는 이들 그림을 통해 다윗의 행위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며 밧세바가 다윗왕과 성관계를 맺고 임신한 것은 생리가 막 끝난 상태여서 결코 임신이 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저지른 ‘인식이 있는 과실’이었다고 분석한다. 다만 다윗에게 목욕하는 장면을 보여줬거나 들킨 밧세바의 행위에 대해서는 당시의 가옥 구조상 고의가 없는 것이므로 그녀에게 요부 혐의를 씌우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예술가들이 창작의 모티브를 어디서 찾는지, 그것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창작해내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우뇌적 직감과 좌뇌적인 지성이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일수록 창작 모티브를 과학적이고도 예술적으로 표현해냈음을 밝혀낸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소크라테스, 미켈란젤로 등이 동성애자였음을 읽어내고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시의 ‘가장 높은 하늘로의 승천’에 묘사된 모습은 임사현상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귀를 자른 고흐, 손이 잘린 자화상을 그린 표현주의 화가 키르히너, 천재성과 호전성이 양립했던 카라바조 등의 자화상을 통해 작가들의 기억과 욕망, 창작 당시의 인권상황 등 화가의 내면을 분석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