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달고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시송편을 만들고 있다. 서천군 제공
충남 서천군 달고개마을에서 주민들이 모시송편을 만들고 있다. 서천군 제공
"안팔리던 모시잎 1kg으로 떡 만들었더니 1만5000원 수입 생겼어요"
서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충남 서천군 화양면 달고개마을. 일명 ‘모시마을’로도 불리는 이곳은 51가구 76명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이다. 주민의 70%가 60세 이상이다. 예로부터 모시로 유명해 모시옷 장인만 10명이 넘지만 모시가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한때 충남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 마을은 2년 전부터 모시송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연중 내내 활기가 넘치고 있다. 4600원의 모시잎(1㎏)으로 떡을 만들면 1만5000원의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은 4억원. 추석 무렵엔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떡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5억원이다. 김순자 할머니(80)는 “그동안 일거리가 없어 적적했는데 요즘엔 손자들 용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생기니 마을도 화목해져”

모시는 원래 옷감 재료로 쓰였지만 남부지방에선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쌀과 함께 갈아 떡, 식혜, 한과 등을 해먹었다.

경제가 발전하며 자취를 감췄던 모시송편은 ‘칼슘과 항산화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인기 특산물로 되살아났다. 달고개마을의 모시송편은 모시잎 함량을 40% 이상 크게 늘려 색이 진하고 향이 짙은 게 특징이다. 특히 주재료를 모두 주민이 직접 재배한 것만 사용해 신뢰를 높여 재구매율이 100%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마을사람들은 그간 ‘돈벌이가 안 된다’며 접었던 모시농사도 다시 시작했다. 양만규 모시체험마을 추진위원장(71)은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모시잎을 이용해 송편 등을 해먹었다”며 “맥이 끊어진 모시송편을 되살려보자며 시작한 것이 마을의 중요한 소득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모시송편이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다. 1997년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을 맡는 등 젊은 시절 농민운동에 나섰던 양 위원장은 2008년 모시송편 사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사람은 반신반의했고, 일곱 가구만 힘을 보탰다.

어렵게 시작한 모시송편 사업이 2011년 매출 1억원대로 성장하자 대부분의 가구가 송편을 만들겠다며 손을 들고 나섰다. 백승화 부녀회장은 “돈을 많이 벌기보다 다같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며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떡을 빚으면서 마을이 몰라보게 화목해졌다”고 말했다. 모시마을 사람들은 모시송편 체험관에서 합동 생일잔치도 열고 있다.

"안팔리던 모시잎 1kg으로 떡 만들었더니 1만5000원 수입 생겼어요"

“떠난 젊은이들 다시 돌아오라”

모시마을 모시송편의 성공 비결로는 고령인력 활용이 꼽힌다. 모시송편을 기억하는 할머니들이 모여 옛 모습 그대로의 떡을 재현해낸 것이다. 양 위원장은 “생산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최신 기계나 젊은이가 할머니들의 손맛을 살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농촌공동체 소득창출사업으로 인정받아 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모시마을 사람들은 냉장 포장장치를 마련,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모시송편으로 올린 소득은 마을의 복지사업에도 쓰인다.

이처럼 모시송편이 성공을 거두자 다른 마을에서도 모시마을을 배우자고 나섰다. 이달에만 전북 임실군 등 세 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다녀갔다. 대도시 초등학생이 견학을 오고 일본, 독일 교수들도 방문했다. 모시송편의 매출 증가율도 주목받았지만 노인들이 모여 다같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다.

모시마을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젊은이들을 다시 마을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모시마을은 1970년대 지금의 세 배인 180가구가 모여 살았다. 양 위원장은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사무직 등 젊은이들이 필요한 일자리가 생겼다”며 “소득이 더 늘어나 마을의 아들딸들이 고향을 찾아와 같이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천=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