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주펀드, 답답한 횡보장 뚫고 '나홀로 두각'
우리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이자 부자이며 천문학적 기부로 존경받고 있는 워런 버핏을 잘 알고 있다.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벤저민 그레이엄이나 피터 린치 같은 이름도 들어 봤을 것이다. 수많은 투자자나 펀드매니저들이 한때 큰 주목을 받다가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냉엄한 현실에서 이들은 오랜 기간 성공한 투자자로 남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른바 ‘가치 투자의 대가들’이다.

○횡보장에서 빛나는 가치주 펀드
가치주펀드, 답답한 횡보장 뚫고 '나홀로 두각'
한국에서도 가치 투자를 바탕으로 운용되는 가치주 펀드들이 올 들어 횡보장 속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가치주 펀드는 연초 이후 지난 9일까지 평균 1.27%의 수익률을 거뒀다. 같은 기간 전체 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 -4.74%에 비하면 양호한 성과다. 가치주 펀드에는 연초 이후 1조2063억원이 유입됐다. 계속 돈이 빠지고 있는 다른 주식형 펀드들과 대비되는 점이다.

가치주 펀드는 시장 등락과 상관 없이 저평가된 우량 종목을 매입했다가 주가가 적정가치에 도달하면 매각해 수익을 내는 방법으로 운용된다. 시장에서 소외된 종목을 매수하다 보니 강세장에서는 지수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횡보장이 전개되면서 종목 간 수익률 차이가 크게 벌어질 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여주는 게 가치주 펀드의 장점 중 하나다.

국내에서 운용되는 대표적인 가치주 펀드로는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밸류고배당펀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 △KB자산운용의 ‘KB밸류포커스펀드’가 꼽힌다. 이들 펀드는 가치주 투자가 몸에 체화된 펀드매니저들이 장기간 운용하면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조5000억원대 국내 최대

이 중에서도 KB밸류포커스펀드는 설정액이 2조5000억원대에 달하는 국내 최대 가치주 펀드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특히 높다.

2009년 11월9일부터 운용되기 시작한 KB밸류포커스펀드는 저평가돼 있고 미래에도 안정된 성장 동력을 갖고 있는 가치주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운용 전략을 갖고 있다. 가치주 펀드는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할 수 있는 안목과 함께 시장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종목 발굴부터 차익 실현 때까지 펀드매니저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 펀드의 운용을 책임지는 최웅필 매니저는 1세대 가치주 매니저라 할 수 있는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밑에서 오랫동안 가치주 투자를 경험하다 2009년 11월 KB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KB밸류포커스펀드 외에도 KB중소형주포커스펀드, KB퇴직연금배당40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최 매니저는 KB밸류포커스펀드의 운용 철학에 대해 “약세장에서도 깨지지 않는 투자가 중요하다”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깨지지 않는 투자’를 위해 ‘안전 마진(safety margin)’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안전 마진은 한마디로 ‘내재 가치와 현재 주식 가격과의 차이’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특정 종목이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투자 심리가 약화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주가는 결국 기업의 내재 가치에 수렴한다고 믿는다면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다. 안전 마진이 확보된 기업을 매수해 깨지지 않는 투자를 하고 수익을 실현한 뒤 이를 다시 장기간 재투자함으로써 장기복리수익률을 극대화한다. 이는 워런 버핏이 얘기한 ‘스노볼(snow ball)’ 개념과 비슷하다. 손해 보지 않고 꾸준히 수익을 올리다보면 복리효과에 의해 원금이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발품 팔고 원칙을 고수하는 펀드
이런 운용 철학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것은 실제 가치주 종목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최 매니저는 크게 저평가 요인 분석과 미래성장 가치 평가에 근거해 가치주를 선정한다. 저평가 요인 분석을 통해서는 시장 평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 저PER주, 기업의 자산가치 대비 주가(PBR)가 싼 저PBR주, 배당수익률이 높은 고배당주, 한동안 실적이 나빴지만 향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 등을 선택한다.

미래 성장 가치 평가를 통해서는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기업을 선정해 투자한다. KB밸류포커스펀드는 대형주든 중소형주든 상관없이 우량주가 저평가 구간에 접어들면 적극적으로 편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펀드의 종목 선정 방식은 사실 다른 가치주 펀드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펀드가 돋보이는 수익률을 거둔 것은 좋은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한 데 있을 것이다.

이 펀드의 매니저들은 연간 600~700회가 넘는 기업 탐방을 한다. 펀드 수익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던 SM엔터테인먼트, 동원산업 같은 종목들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KB밸류포커스펀드는 연간 주식매매 회전율이 50%에 불과하다. 이는 한 번 산 주식을 평균 2년 동안 보유한다는 의미다. 많은 발품을 팔아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소외받고 있는 좋은 주식을 매입해 장기 보유함으로써 고수익을 거두는 가치투자 원칙을 잘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KB밸류포커스펀드(A클래스)는 지난 9일 현재 1년 수익률 18.18%, 3년 수익률 55.36%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기간 수익률 순위가 각각 상위 2%, 1% 안에 드는 우수한 성과다. KB밸류포커스펀드는 확고한 가치투자 원칙과 오랜 투자 경험을 가진 노련한 펀드매니저에 의해 펀드 출시 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치주펀드, 답답한 횡보장 뚫고 '나홀로 두각'
꾸준히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두어 왔다.

다만 최근 급격한 자금 유입으로 인한 펀드의 대형화는 이 펀드를 운용하는 데 새로운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펀드에 투자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김희주 KDB대우증권 상품개발실장 heejoo.kim@dws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