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고혈압·당뇨병이 있거나 노년층은 폭염이 닥치면 심근경색·뇌졸중 등이 발생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으므로 더위를 피하는 생활습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경DB
전국에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고혈압·당뇨병이 있거나 노년층은 폭염이 닥치면 심근경색·뇌졸중 등이 발생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으므로 더위를 피하는 생활습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한경DB
푹푹 찌는데, 땀은 안나고 실신까지…노년층 '뇌졸중 주의보'
푹푹 찌는데, 땀은 안나고 실신까지…노년층 '뇌졸중 주의보'
49일간의 장마가 끝나고 낮 최고 기온이 35도에 육박하는 폭염(暴炎)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하순부터 지난 7일까지 거의 매일 한 명꼴로 더위로 사망하고 있다. 기상청은 이달 말까지 불볕 더위가 지속될 것으로 예보했다. 당분간 ‘폭염과의 전쟁’이 불가피한 만큼 건강 관리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년층 돌연사 위험 커

9일 현재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폭염주의보는 최고기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일부 남부지방에선 체감온도가 40도를 넘기도 한다. 한반도 전체가 ‘찜통 더위’라는 얘기다.

폭염이 닥치면 노년층과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가 갑자기 숨지는 경우가 늘어난다. 노년층은 체온 조절능력이 약해 더위에 쉽게 쓰러진다. 별다른 지병이 없는 노인도 폭염으로 돌연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푹푹 찌는데, 땀은 안나고 실신까지…노년층 '뇌졸중 주의보'
이정권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이가 들면 체온조절 중추 기능이 쇠퇴하기 때문에 신체의 열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한다”며 “뇌가 체온 상승을 감지해도 노화로 신진대사가 느려진데다가 땀샘이 감소한 상태여서 체온 조절을 제대로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위 먹은 증상 중에 가장 위험한 신호는 땀이 안 나는 상태에서 실신하는 경우다. 독거 노인 폭염 사망의 주요 원인이다. 급격한 열 충격으로 체온 조절 기능이 사라졌다는 징후다. 폭염이 몸 안에 그대로 들어와 체내를 급속히 달군 경우다. 피부는 서늘할 정도로 차갑다. 이럴 때는 즉시 환자를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찬물 등으로 체온을 빨리 떨어뜨려야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는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혈액이 끈적거리게 돼 혈압이나 혈당이 급상승한다. 폭염 때 특히 주의해야 할 환자들이다.

심장병이나 뇌경색 위험도 평소보다 높아진다. 김경문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팀이 1996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응급실에서 뇌졸중으로 진단받은 602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계절별 발생 추이를 조사한 결과 한여름인 7~8월에 발생한 뇌졸중 환자 수가 한겨울인 12~1월보다 많았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고 6시간 이내로 수면할 경우 뇌졸중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평소에 이뇨제 혈압약 등을 먹거나 정신과 약물을 장기 복용하는 경우도 더위에 아주 약하다. 혈압이 과도하게 떨어질 수 있고 어지럼증이나 구토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당뇨병 ‘탄산음료’ 삼가야

만성질환이 있는 노년층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외출을 가급적 줄이고 에어컨 선풍기를 틀어 실내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22~24도가 뇌를 비롯한 신체 모든 부위가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도다. 고혈압이 있으면 날이 아무리 더워도 찬물 샤워를 하면 안 된다. 무더위로 확장된 혈관이 갑자기 수축하면 혈압이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는 빙과류나 탄산음료를 멀리해야 한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더운데 한 번쯤이야…’하면서 방심하는 사람이 많은데 땀을 많이 흘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당분이 든 음료수를 마시면 체내에 빨리 흡수돼 혈당 수치가 급속히 올라간다”고 경고했다.

무더운 날씨에 갑자기 원인 모를 구역질이 난다면 탈수 때문일 수도 있다. 신정은 단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무더운 날씨에는 구역질이나 구토를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난다”며 “상당수는 자율신경계 이상 때문인데 영양 부족, 과로나 더위로 인한 탈수, 수면 부족 등이 원인”이라며 “주기적으로 구토가 일어난다면 위장관운동촉진제 등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대야 때 맥주는 안 좋아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씨를 뜻한다. 열대야 때는 체온을 낮추려고 몸의 중추신경계가 활발하게 깨어 움직이기 때문에 잠이 잘 안 온다. 밤에 무리한 운동을 하거나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면 잠이 더 달아난다. 격렬한 운동이나 알코올은 몸의 수분을 빼앗아 오히려 체온을 올리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에어컨을 한두 시간 틀어 실내 온도를 낮추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하는 것이 좋다.

요로 결석이 있는 사람도 더운 여름에 병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잔 돌멩이 같은 결석이 신장에서 방광으로 내려가는 요관에 잠복해 있다가 탈수 증세로 소변량이 줄면서 방광 입구를 꽉 틀어막아 극심한 통증을 가져온다. 따라서 물과 전해질 음료를 자주 먹어야 한다. 흔히 맥주가 결석 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름철 무더위 속 음주는 탈수를 유발하고 되레 요로 결석 위험을 키울 수 있다.

노용균 강남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폭염은 평소 갖고 있던 건강 위험 요인을 일시에 증폭시킨다”며 “몸에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 단순히 더워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말고 잠복해 있는 질병이 있는지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