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반부종 레이저 치료기 첫 국산화
“의료기기는 신약과 비슷합니다. 전에 없던 치료법을 개발해 신제품을 출시하면 새로운 블루오션이 만들어지죠.”

지난 2일 경기도 일산 루트로닉 본사에서 만난 황해령 사장(57·사진)은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력이 있으면 불황에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루트로닉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당뇨병성 황반 부종을 치료할 수 있는 레이저 수술기 ‘SRT 레이저’에 대한 제조 품목 허가를 받았다. 당뇨병성 황반 부종은 실명의 원인이 되는 3대 안과질환 중 하나다. 루트로닉이 이번에 개발한 수술기는 1000분의 1초 만에 시세포의 50% 이상이 밀집한 황반 중심부의 망막색소상피층(RPE층) 중 이상 부분만 제거해준다.

황 사장은 “국내 당뇨병 환자 400만명 가운데 40만명이 앓고 있는 당뇨병성 황반 부종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루트로닉은 피부 치료용 레이저 의료기기 시장의 ‘히든 챔피언’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1위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2위다. 작년 매출 441억원 중 64%를 수출에서 거뒀다.

황 사장이 회사를 설립한 1997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레이저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곳은 전무했다. 수입 제품에만 의존했다. 황 사장은 1999년 기술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레이저 의료기기 관련 승인을 획득했다. 대만으로 첫 수출에 나선 것도 이맘 때다.

황 사장은 “매년 매출의 15%가량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연구 인력도 전체 인원의 30%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며 “그렇게 5~6년 동안 자체 연구기술력을 빠르게 축적해 해외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앞으로 피부치료용 레이저 의료기기에서 초정밀 수술용 레이저 의료기기 쪽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피부 레이저 시장 규모가 3억달러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 시장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는 황반변성 치료 레이저 분야를 새 먹거리로 정하고, 라식 레이저 기기를 처음 개발한 이고르 그라도프 전 루메니스(Lumenis) 최고기술책임자(CTO)를 2010년 회사 CTO로 영입했다. 루트로닉은 또 독일의 한 대학 부설연구소와 공동으로 아날로그식 황반변성 치료 레이저 기술을 디지털화하기도 했다.

황 사장은 이번 승인 제품이 아직 보건의료연구원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받지 않아 2년간 판매할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 “황반 부종 환자의 황반 레이저 조사에 관한 것이므로 제품은 기존 레이저 의료기기 품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