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얽힌 그리움과 추억…맛깔나는 詩로 음미해볼까
‘한숨과 눈물로 간 맞춘/수제비 어찌나 칼칼, 얼얼한지/한 숟갈 퍼올릴 때마다/이마에 콧잔등에 송송 돋던 땀/한 양푼 비우고 난 뒤/옷섶 열어 설렁설렁 바람 들이면/몸도 마음도 산그늘처럼/서늘히 개운해지던 것을//살비듬 같은 진눈깨비 흩뿌려/까닭 없이 울컥, 옛날이 간절해지면/처마 낮은 집 찾아들어가 마주하는,/뽀얀 김 속 낮달처럼 우련한 얼굴/구시렁구시렁 들려오는/그날의 지청구에 장단 맞춰/야들야들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훌쩍훌쩍 삼키며 목메는 얼큰한 사랑.’

이재무 시인의 시 ‘수제비’다. 시인의 노래처럼 한 나라의 문화를 말할 때 그 나라 사람의 정서가 담긴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표 문화라 할 음식과 시(詩)가 만났다. 김종해 이재무 유안진 김용택 이병률 장태평 등 76명의 시인이 각자 기억과 추억이 담긴 음식을 소재로 시를 쓰고 한 권의 시집에 담은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문학세계사)을 통해서다.

시인들은 김치찌개 미역국 같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어머니를 추억하고, 배고픔을 달래 주던 수제비와 소풍날 먹던 김밥 등 음식에 담긴 우리 정서와 기억을 시로 되살렸다. 이규리 시인은 미역국을 노래하며 ‘엄마’를 떠올린다. 산고를 겪은 후 미역국을 먹는 문화가 음식을 통해 아프게 전해져 온다.

‘엄마의 맛//엄마가 나를 낳고 미역국 먹을 때/더운 국물 먹고 눈물 같은 땀을 쏟아낼 때/길고 어두웠던 산고가 비로소 씻겨나갔다고//열 달을 품었던 생명 쏟아내고/이 땅, 엄마의 엄마 할머니의 할머니가 먹었던 미역국/텅 빈 자궁을 채우고 생살을 아물게 하는/미역국에서 엄마가 나왔다/(…)/미역국을 먹고 엄마가 되었다/엄마를 알았다.’

소풍날 먹던 김밥도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다. 이병률 시인은 지금도 어느 소풍날 김밥을 먹고 있을 ‘아이’에게 사랑과 희망을 말한다.

‘김밥은 단면을 먹는 것/둥그런 마음을 먹는 것/(…)/김에서는 바람의 냄새/단무지에선 어제의 냄새/밥에서는 살 냄새/당근에선 땅의 냄새//아이야/혼자 먹으려고 김밥을 싸는 이 없듯이/사랑하는 날에는 김밥을 싸야 한단다//아이야/모든 것을 곱게 펴서 말아서 굴리게 되면/좋은 날은 온단다.’

메밀냉면 한 그릇에서 시간을 읽어내는 장옥관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는 초여름 더위를 날려주는 메밀냉면 한 사발에 감사하게 된다.

‘겨울을 먹는 일이다/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 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 앉히는 일/팔팔 끓인 고기국물에 얼음 띄워/입 안 얼얼한 겨자를 곁들이는 일//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창 밖에 흰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 맛.’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