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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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사진)이 TV에 이어 생활가전사업을 총괄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말이다. 당시 윤 사장은 “냉장고까지 맡으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바로 얼어버렸다”고 했다. 1978년 입사 후 30여년간 TV 사업만 생각해온 그로서는 냉장고나 세탁기 쪽은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성과가 나오기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야 하는 생활가전 사업은 ‘속도전’을 벌이는 일에 잔뼈가 굵은 그에게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그는 1년 반 만에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사업을 “확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냉장고를 세계 1위로 끌어올렸고, 세탁기와 에어컨도 프리미엄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2006년부터 삼성 TV를 7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려놓은 공로로 ‘미스터 TV’로 불린 그의 목표는 이제 글로벌 가전 1위다. “2015년까지 세계 생활가전 시장에서 1위에 오르겠다”는 그의 전략을 들어봤다.

▷생활가전사업을 맡고 나서 바뀐 게 있다면 뭡니까.
“개인적으로 좋은 남편이 됐습니다. TV 사업을 할 때는 TV만 보니 집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겠죠. 그런데 요즘은 새로 나온 세탁기와 냉장고를 꼭 사용해보느라 집안일 돕는 게 많이 늘었습니다. 저도 바뀌었지만, 생활가전사업부 임직원들은 더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동안 주인의식을 강조해왔는데, 긍정적인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회사 전체적으로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는데, 생활가전사업부에서만 200여명이 응모했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졸 신입사원들이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해 신개념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제조라인에 있는 한 직원은 여러 사업 아이디어와 회사 비전에 대한 생각을 장문의 이메일로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임직원들의 이런 열정이 삼성 생활가전이 세계 일류로 도약하는 시점을 앞당기리라고 확신합니다.”

▷2015년까지 글로벌 가전 1위에 오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가전제품은 교체주기가 긴 아날로그적 특성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TV는 7년 안팎인데 냉장고가 14년, 세탁기는 15년입니다. 에어컨도 10년이 넘습니다. 전자레인지가 그나마 7~8년으로 짧은 편이죠. 그래도 우리는 혁신적인 제품을 계속 출시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선진 시장의 교체 수요와 신흥 시장의 신규 수요가 계속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시장을 선도해가면 2015년에 세계 가전 시장 1위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TV에선 삼성처럼 세계 전 지역에서 잘하는 업체들이 있지만 생활가전에선 지역별로 강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전략으로 세계 1위에 오를 계획입니까.
“TV 사업은 패널만 있으면 됩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얘기죠. 또 제품을 한 번에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데, 생활가전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입장벽도 높고, 지역별로 문화가 달라서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 출시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지역별로 소비자들이 정말 사고 싶은 혁신제품을 계속 내놓을 예정입니다. 6개 권역별 라이프스타일 연구소와 삼성전자 내의 혁신 기술력을 접목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당장 올해 실적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올해 세계 가전 시장은 작년보다 3%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 같은 선진 시장은 1% 성장하고, 신흥 시장은 5% 이상 커질 것으로 봅니다. 삼성 생활가전 사업은 시장 성장률보다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단기적인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가 올해부터 나타날 겁니다.”

▷이미 지난해 냉장고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이 장점을 살려 냉장고 사업에서 적지 않은 성장을 했습니다. 세계 전 지역에서 고른 성장을 한 것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경제환경이 어려운 북미와 유럽에서도 소폭 성장을 했고, 신흥 시장에서도 큰 폭의 성장을 했습니다. 시장이 커지는 기회를 잘 공략한 덕분에 냉장고에서 세계 1위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판단하나요.

“중국 외 지역에서는 아직 약합니다. 하지만 현재 보유한 생산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면 상황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중·장기 관점에서 매우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삼성전자의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중국 업체와 차별화된 제품으로 대응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삼성의 미래 가전사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뭔가요.

“미국 월풀과 독일 보쉬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제품입니다. 그 제품을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가 ‘프리미엄’입니다. 삼성 가전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구축하는 게 가장 큰 임무입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사서 사용할 때 최고의 만족감과 가치를 느끼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입니다.”

▷가전사업을 맡은 뒤 삼성 가전제품이 많이 커졌습니다. 앞으로도 대형화 전략을 지속할 겁니까.

“제품 대형화는 계속 진행합니다. 하지만 외관은 그렇게 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보다 실제 내부 면적이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겁니다. 이런 트렌드를 받쳐주려면 프레임 설계가 핵심 기술이 되겠죠. 성능은 좋고 크기는 작은 부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해집니다.”

▷그동안 디자인과 품질도 많이 강조했습니다.

“품질과 사업의 기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 부문에 걸쳐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프리미엄 시장을 계속 차지하기 위해 지난해 양문형 냉장고(T9000)를 내놓은 데 이어 올해는 푸드쇼케이스(FS9000), 드럼세탁기(W9000), 에어컨(Q9000)을 동시에 선보였습니다. 또 가전제품은 공장에서 출하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정 내에 완벽하게 설치돼야 모든 공정이 끝납니다. 그래서 운반이나 설치 단계까지 살피면서 불량의 근원을 찾아내 품질을 개선했습니다. 디자인에 있어선 제품의 내외관뿐 아니라 소재와 디테일한 부분까지 삼성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디자인을 계속 혁신해 나갈 생각입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