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야마 동물원, "펭귄이 머리 위로 날고, 염소 만져 보고"…뻔한 동물원을 버렸다
‘펭귄이 날고, 사자가 머리 위에서 뛰는 동물원’, 인구 30만명도 채 안 되는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의 한 동물원. 이곳은 한때 관람객의 발길이 끊어져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은 연 300만여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자리잡았다.

이 동물원엔 맹수를 가두는 철창도, 유리창으로 막힌 사파리 열차도, 동물원의 전형적 이벤트인 돌고래쇼도 없다. 대신 하늘을 나는 펭귄과 자유롭게 뛰어노는 사자들, 코 앞까지 다가와 뒹구는 북극곰이 있다. 일본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이야기다. 폐쇄 직전까지 내몰렸던 동물원이 어떻게 ‘기적의 동물원’으로 탈바꿈했을까.

○일본 최북단 동물원의 실험
아사히야마 동물원, "펭귄이 머리 위로 날고, 염소 만져 보고"…뻔한 동물원을 버렸다

겨울이면 영하 20도 아래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아사히카와에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들어선 건 1967년. 주민들은 일본 최북단에 세워진 이 동물원이 지역 경제를 살려줄 것으로 믿었다. 1975년 누적관람객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초반 성적은 좋았다. 1980년대가 되자 상황이 뒤바뀌었다.

일본 전역에 테마파크 붐이 일면서 관람객이 급격히 줄었다. 1994년엔 여우를 매개로 하는 에코노콕스 감염증이 생겨 일시 폐장하는 위기마저 닥쳤다. 이후 관람객의 발길은 더 뜸해졌고, 1996년 관람객 수는 역대 최저 수준인 26만명으로 떨어졌다. 시의회는 급기야 동물원 폐쇄를 검토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민간 매각도 실패했다.

사육사들은 막막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당장 안락사를 당해야 하는 야생동물들의 처지도 안타까웠다. 고스게 마사오 당시 원장과 사육사들은 동물원 개혁에 나섰다. 이들은 “관람객들이 동물 엉덩이만 보다가 가게 하지 말자. 야생의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알려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예산이 문제였다. 폐쇄를 논의 중인 상황에서 지원금은 생각도 못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체념하지 않았다. 대신 ‘발상의 전환’을 시작했다. 학습회를 만들고, 동물의 생태를 공부했다. 남과 다른 동물원이 되기 위해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했다. 구체적인 계획안을 들고 시장을 찾아가 설득, 겨우 폐쇄 위기를 넘겼다.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한 건 호랑이 우리였다. 잠만 자고 있는 호랑이는 아무 감동도 주지 못했다. 대신 관람객이 호랑이 우리 아래로 지날 수 있게 만들었다. 머리 위에서 바라보는 호랑이는 발톱까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안겨줬다. 야행성 동물을 관찰하는 ‘밤의 동물원’도 만들었다. 사육사가 직접 관람객에게 동물의 특성을 알려주는 가이드를 신설했다. ‘동물의 생태’에 초점을 맞춘 특이한 전시법은 점점 입소문을 타고 일본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인 1동물’ 창의적 연구

아사히야마 동물원에는 ‘누카도코’라는 독특한 조직 문화가 있다. ‘누카도코’는 항아리에 담긴 소금의 맛이 집집마다 다 다르듯,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자기만의 색을 찾는 기업문화를 뜻한다. 동물원 혁신을 위해 30년간 학습회를 운영한 사육사들은 정규직 14명과 임시직 10명 등 총 24명에 불과하다. 소수 인력으로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끈질긴 연구와 집념으로 만든 창의적 아이디어가 꼽힌다. 이들은 학습회를 조직해 ‘1인 1동물’을 연구하고 창의적인 전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같은 방식은 이후 ‘행동주의 전시법’을 탄생시켰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펭귄이 머리 위로 날고, 염소 만져 보고"…뻔한 동물원을 버렸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혁신 이전까지 동물원의 전시법은 세 가지였다. △동물의 분류대로 구분하는 법 △서식지 기준으로 동일 지역의 야생동물을 모으는 법 △살고 있는 서식지를 재현하는 생태적인 구분법 등이다. 아사히야마는 이 모든 법칙을 버렸다. 대신 ‘행동주의 전시법’을 탄생시켰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 "펭귄이 머리 위로 날고, 염소 만져 보고"…뻔한 동물원을 버렸다
우선 높은 곳에서 휴식을 즐기는 맹수를 위해 우리를 공중에 띄워 설계했다. 나무 위에서 주로 생활하는 오랑우탄을 위해 높은 기둥을 밧줄로 연결한 공중 방사장을 만들었다. 원숭이는 사람들보다 높은 장소에서 지낼 수 있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줄였다. 낭떠러지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염소의 야생성을 살리기 위해 절벽도 만들었다.

1997년에는 ‘어린이 목장’이 등장했다. 토끼 오리 염소 등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 있게 했다. 이것이 동물원을 성공으로 이끈 ‘행동전시’의 시작이다. 1999년에는 ‘원숭이 산’을 조성했다. 원숭이의 튀어나온 이빨을 잘 볼 수 있게 관찰용 유리에 원숭이가 즐겨 먹는 꿀을 발라둔 것. 투명한 펭귄관 아래에는 통로를 만들어 걸어가며 펭귄이 머리 위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기린의 먹이통 앞에 관람창을 설치하자, 기린이 먹이를 먹는 모습이 관람객들의 코앞에서 보였다.

동물과 관람객의 거리도 최소화했다. 바다표범 전시관은 투명한 수직의 아크릴 원통 형태로 만들어 360도 각도에서 바다표범을 만날 수 있게 했다. 북극곰 우리도 중앙에 반구 모양의 투명한 유리를 설치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에 투명 아크릴을 씌워 침팬지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침팬지의 숲’도 꾸몄다. 사람이 동물을 보는 게 아니라, 동물이 사람을 보는 형태다.

○10년 혁신 끝 1등 추월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관람객에게 억지로 동물과 공감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이 동물원에는 막 낳은 까마귀 알, 전깃줄에 걸려 죽은 새도 그대로 전시한다. 야생동물을 가두어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 전시해 누구나 자연의 섭리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다.

생각을 바꾸자 모든 게 전시 아이템이 됐다. 동물들의 식사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볼거리로 변했다. 먹이를 던져주지 않고 직접 먹이를 찾게 하자 동물들의 눈빛도 변했다. 자연에 가까운 생활 환경을 만들자 공생(共生)전시도 가능해졌다. 기린과 호로호로새가, 거미원숭이와 캐피바라가 각각 한 우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1994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혁신은 10년 뒤 빛을 발했다.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 관람객 수를 추월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혁신은 다른 동물원으로도 이어졌다. 이시카와현 노미시의 이시카와 동물원은 오랑우탄관에 아사히야마 동물원과 똑같은 산책 시설을 만들었다. 동물의 식사 시간을 공개하고, 천연기념물 따오기의 알 부화에도 성공했다. 도쿄 우에노 동물원도 2006년 세계 최초로 곰의 동면 전시를 시작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전혀 다른 업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이치현의 주부국제공항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보고 영감을 얻어 공항을 리모델링했다. 평소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활주로 등 제한구역을 개방, 비행기 이착륙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만들어 큰 인기를 끈 것.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혁신을 지휘한 고스게 전 원장은 “꼭 돈을 들이지 않아도 작은 발상의 전환이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라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혁신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