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은 기대지 말고 제압하라"…약자가 강자 이기는 법
올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가 정치 유배 시절인 1513년 집필한 <군주론>이 탄생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마키아벨리 사후 40년가량 지난 1569년 발행된 영어사전에 이미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마키아벨리적)’이란 형용사가 등장한다. ‘권모술수에 능한’이란 뜻이다. 그의 <군주론>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의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운은 기대지 말고 제압하라"…약자가 강자 이기는 법
“마키아벨리를 악(惡)의 교사(敎師),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 이론가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많은 책은 <군주론>이 그가 모시던 메디치 가문을 위한 책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군주론>은 독재자가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연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봄학기 아홉 번째 시간.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는 “마키아벨리는 굉장히 순수하고 선한 사람이었다”는,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른 분석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마키아벨리를 연구하기 위해 2011년 한 해 동안 마키아벨리가 외교 사절 등으로 다녔던 전 유럽 지역을 총연장 7000㎞에 걸쳐 답사하기도 했다.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풍요로움이 아니라, 궁핍함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먼저 배웠다네.’

“마키아벨리가 친구에게 한 말입니다. 아버지 베르나르도는 세금을 못 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부자들이 공부하는 인문학을 꼭 가르치고 싶어했답니다. 당시 피렌체를 휩쓸던 리비우스의 <로마사>라는 책을 구하기 위해 출판사에 가서 넉 달 동안 색인작업을 하고, 책 한 권을 받아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고생해서 갖다준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리고 써낸 책이 <로마사 논고>입니다. <군주론>은 <로마사 논고>를 쓰면서 중요한 부분만 뽑아낸 겁니다.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로마사 논고>를 꼭 읽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에겐 전쟁의 트라우마도 있었다. 그가 태어난 피렌체는 당시만 해도 약소국이어서 성장하는 동안 세 번의 침략을 겪었다. 아홉 살 때 강국이었던 나폴리가 피렌체의 수장인 로렌초 데 메디치를 암살하려 했고, 한 해 뒤에는 나폴리 군대가 피렌체를 전면 포위했다. 그 과정에서 열 살의 나이에 나폴리 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탈출하는 경험을 했다. 25세 때인 1494년에는 프랑스가 나폴리를 뺀 이탈리아 전역을 정복하기도 했다.

“자신의 나라가 초토화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왜 우리는 이렇게 약자로 살아야 하나, 왜 우리는 강대국에 짓눌려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로마사 논고> <군주론>과 함께 명저로 꼽히는 <전쟁의 기술>을 쓴 것은 그런 연유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프랑스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자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잃고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신정(神政) 정치를 시작했다. 피렌체 사람들이 스스로를 신의 사도라고 주장하며 “피렌체가 프랑스에 쑥대밭이 된 것은 피렌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아서다”라고 설교하던 사보나롤라의 언변에 현혹된 것이다.

“하지만 3년쯤 지나자 사보나롤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신의 사도라면 불 위를 걸어보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피해 보려던 사보나롤라는 결국 사기꾼으로 판명 나 화형에 처해집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을 앞세운 지도자가 어떻게 권력을 잡고 몰락하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사보나롤라의 몰락 직후인 1498년, 마키아벨리는 29세의 나이에 피렌체 외교를 담당하는 제2 서기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14년간 유능한 공무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최고로 악명높은 알렉산데르 6세였습니다. 그의 아들이 체사레 보르자입니다. 이탈리아 중부 로마냐 지방을 ‘마키아벨리적’으로 정복한 인물이죠. 보르자는 ‘타인의 힘이나 호의로 권력을 잡지 않겠다’는 말을 했고요, 그런 그를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다고 많은 이들이 분석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군주론 말미에 ‘보르자도 결국 당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피렌체를 점령하려는 교황청 소속의 보르자와 피렌체 소속의 마키아벨리는 적이었지만, 이내 친구가 됐다. 마키아벨리는 보르자가 휘하의 고참 장수 네 명의 반란을 제압한 사건(마조레의 반란) 등을 관찰하면서 군주가 갖춰야 할 ‘사자의 용기’ ‘여우의 지혜’ 등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보르자는 아버지인 교황 덕에 20대에 사령관이 됐습니다. 네 명의 장수는 50대의 백전노장들이었죠. 장수들이 애송이 같은 보르자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마키아벨리는 보르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그러나 보르자는 자신이 하는 방식을 잘 보라고 합니다. 그는 장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죠. 마음을 놓게 한 다음 네 명을 식사에 초대해 일거에 죽여버립니다.”
"운은 기대지 말고 제압하라"…약자가 강자 이기는 법
◆“운(運)에 기대지 말고, 운을 제압하라”

마키아벨리가 그 다음 만난 군주는 알렉산데르 6세 뒤를 이은 교황 율리우스 2세다. 율리우스 2세는 마키아벨리가 “우리 피렌체가 늑대를 피하자 호랑이를 만났다”고 할 정도로 마키아벨리적인 인물이었다.

“알렉산데르 6세가 아들을 통해 전쟁을 한 것과 달리, 율리우스 2세는 직접 전쟁을 했습니다. 당시 교황은 군대가 없고, 300명의 경호대만 있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는 그 300명에다 전투를 모르는 추기경들을 장수로 앉혀서 출병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강자인 페루자와 볼로냐를 차례로 점령합니다. 특히 페루자를 공격할 때는 호위병은 뒤에 둔 채 혼자 말을 타고 돌진하면서 ‘신의 권위에 무릎꿇으라’고 외치니 페루자의 군주가 그 기세에 눌려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마키아벨리는 그걸 ‘포르투나(행운)’라고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남자답게 난폭하고 거칠게 낚아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불확실한 운에 기대지 말고 운을 제압할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자는 기회 올 때까지 침묵·위장으로 강자 대하라”


1512년 율리우스 2세의 후원을 받던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손에 넣는다. 마키아벨리는 반역 혐의로 체포돼 22일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1527년까지 정치적 유배 생활을 했다.

“마키아벨리가 유배 초기에 쓴 <군주론>은 일종의 이력서였습니다. 메디치 가문에 ‘나를 등용하면 군주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겠다’는 호소였습니다. <군주론>을 집필해 메디치 가문의 수장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직접 바치기까지 했지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맙니다.”

군주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이자 ‘군주가 악을 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해석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무슨 일에서나 선(善)을 내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좋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파멸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도 안 된다.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 또한 그 태도를 때에 따라 행사할 줄도, 중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마키아벨리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이미 플라톤이 <국가론>을 통해 ‘우리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가 누가 되든지, 국가의 선을 위해서는 시민이든 적이든 속일 권리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마키아벨리가 활용한 교재는 <군주론>뿐 아니라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등이었다.

“<로마사 논고>에는 약자가 강자에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나옵니다. 약자는 기회가 올 때까지 강자에게 침묵과 위장으로 대하되, 일단 무기가 주어지면 거리낌 없이 행동하라는 내용입니다. <전쟁의 기술>에는 이탈리아가 외부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는 이유가 무능한 군주 때문이라며 군주를 비판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마키아벨리는 1526년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메디치가 출신 교황인 클레멘트 7세의 부름을 받고 ‘5인 성벽관리 위원회’으로 복직했다. 그리고 이듬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앞두고 있던 마키아벨리에게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에게 그는 ‘천국과 지옥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면 지옥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저세상으로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슬픔이 사라질 것이라는 나약한 환상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옥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모든 이들에게 군주가 되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하고 싶은 일과 공부를 하되 삶은 남을 위해 사는 ‘진정한 군주’가 되라는 것입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