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intern)
[명사] 1. 수련의(참조어: 레지던트) 2. 수습사원, 교육 실습생, 교생

[형용사] 1. 자체 내의, 비공식적인 2. 내부의, 내근의, 기숙하는

[타동사] 1. (포로 등을 일정한 구역 안에) 구금(억류)하다

나는 ‘인턴’입니다. 어떤 사전도 내 업무와 소속과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얼핏 명사 2번이 비슷해 보이지만, 현실의 나를 제대로 설명하는 풀이는 결단코 아닙니다. 나는 의사도, 선생님도, 회사에 기숙하는 내부 사람도 아닙니다.

형용사 1번과 타동사 1번의 정의를 원용하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무실 안에 갇혀 있는 비공식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요즘엔 인턴을 뭐라고 해석하는지 아세요? 참을 ‘인(忍)’에 돌다의 ‘턴(turn)’을 합친 말로 통합니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돌아버린다는 뜻입니다.

인턴들의 생활은 인기 TV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의 정규직 전환 입성편이나 ‘인간의 조건’의 자존심 없이 살기편보다 훨씬 치열하고 혹독하며 ‘리얼’하답니다. 직장인도 아닌 ‘취준생(취업준비생)’ 인턴들의 얘기도 들어준다니 이번 기회에 속시원히 털어놓으렵니다.
[金과장 & 李대리] 요즘 인턴의 뜻은…忍 참지 않으면 turn 돌아버린다네요
○상사의 본색 … 인턴 밝힘증
대기업 종합상사의 자원개발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24세 여대생 고소녀입니다. 저는 회식 자리에서 술만 마시면 치근덕거리는 이 차장을 고발합니다. 이 차장은 인턴 첫날 환영식 자리에서 반갑다고 악수하자면서 손을 주물럭거렸고 고전적인 손금 봐주기 수법을 쓰면서 스킨십을 유도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얼마 전 회식 때는 치킨을 한입 탐욕스럽게 뜯고선 ‘우리 00도 닭살 돋았네’라며 제 팔을 쓰다듬는데, 성희롱 기운이 제 대뇌에서 전두엽 피질까지 전달되더군요. 이 정도면 희롱을 넘어선 추행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문제는 귀갓길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비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달려와선 택시를 같이 타더니 ‘핫초코 한 잔만 타달라’고 생떼를 쓰더군요. ‘결혼도 하신 분이 왜 이러시냐’고 하자 ‘요즘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 외롭다’며 이혼 위기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넋두리를 늘어놨습니다.

이후에도 술만 먹으면 밤에 전화해서 ‘보고 싶다. 잠깐 만나자’고 희롱을 일삼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이라며 하트무늬 속옷을 택배로 보내 저를 폭발하게 만들었습니다. 항의했더니 ‘내가 보낸 게 아닌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더군요.

직원들 앞에서는 멀쩡하게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 속이 터지겠습니다. 친한 박 대리에게 털어놓자 인턴들에게 이상한 짓을 하기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니 3개월만 버티라고 하더군요. ‘문제의 인턴’으로 한 번 낙인 찍히면 이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 입사 원서를 쓸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면서 말이죠. 경험자들도 확실한 물증 없이 고발하면 제가 피해를 본다고 가만 있으라고 하고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나 강원랜드 직원이 인턴에게 합격시켜주는 조건으로 키스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6개월짜리 인턴이라지만 마음의 상처까지 몇 개월이면 아무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일할 때만 직원, 회식은 ‘열외’

서울의 한 대학에서 행정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28세 남자입니다. 대학에는 행정업무를 도와주는 대학원생 조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근로학생이 있고 졸업생이나 외부인을 대상으로 2년제 계약직으로 뽑는 행정인턴이 있죠.

주로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니 정장보다는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첫 출근날 ‘행정인턴은 직원이나 마찬가지니까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으라’고 하더군요. 보수나 업무 여건도 조교보다 우대해주겠다면서요.

일을 해보니 서열이 조교보다 아래, 근로학생보다는 위인데 애매한 잡일은 전부 제게 시키더군요. 방학 때 다른 사람들은 오후 3시에 퇴근하는데 저는 오후 5시까지 남아 일을 했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걸로 소외될 때가 제일 서럽습니다. 직원 회식비로 조교 1인당 5만원이 나오거든요. 근로학생은 한창 먹을 나이라고 부르면서 저는 안 끼워줍니다.

다음날 삼겹살에 소주 마시고 얼굴이 퉁퉁 부어서 출근해서는 회식 때 재미있었던 얘기를 하다가도 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집니다. 제가 덩치가 커서 많이 먹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숟가락 하나 더 놓는다고 회식비가 거덜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제 회식 따위는 신경 끄기로 했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행정인턴이 세금 낭비라는 기사가 나오면 울화통이 터지지만요….

○쥐꼬리만한 월급에 출장비 ‘먹튀’

수도권의 한 시청에서 3년 전 인턴으로 일하다 대기업에 취직한 34세 사원입니다. 공공기관 인턴이라고 하면 책도 읽고 취업 공부도 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잡다한 심부름에 앉을 새 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자칫했다간 커피 심부름 등 단순 노동만 하는 말 그대로 ‘커피 인턴’으로 전락합니다.

제가 시청 인턴으로 있을 때 커피 정말 많이 탔습니다. 여직원들에게 시켰다간 성희롱으로 오해받기 십상이고 남자인 저는 별 부담이 없다며 마구 시키더군요. 여직원들이 많다 보니 생수통 교체하기, 택배 나르기 같은 일도 다 제 몫이었죠.

머슴처럼 부려먹고선 어쩌다 회사 면접 있는 날 오전에 잠깐 자리를 비우려면 그렇게 구박합니다. 팀장님은 잘하고 오라고 격려했지만, 밑에선 “근무시간에 면접 보러 다닐 거면 뭐하러 인턴 왔냐. 얼른 취직해서 나가라”고 짜증을 냅니다. 눈치 보여서 면접 보러 다니기도 어려웠습니다. 한 상사는 일하는 도중에도 툭하면 제게 “기술 배워 공장에나 가라”고 무시하는 말만 해서 사람 속을 긁어놓았죠.

가끔 공무원들이 바쁘다고 서류 배송과 관공서 서류 떼오는 일 등 퀵서비스 업무를 인턴에게 시키거나 출장을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4~5개월 동안 외부에 나가다 보니 교통비와 점심값을 무시하지 못하겠더라고요.

3년 전이었는데 4대 보험을 떼고 나면 시급 4000원 수준이었어요. 월급이 70만원을 넘지 않았으니 88만원 세대보다 못했고 차비, 식비 빼면 남는 게 없었죠. 인턴이 끝나기 전에 출장 수당을 계산해주겠다고 하더니 근무 마지막 날까지 챙겨주지 않더군요. 예산이 없다고 말입니다. 취직 준비하면서 용돈 버는 셈치고 인턴했는데,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했는데 맨날 구박하던 상사가 “왜 민원까지 넣어 일을 크게 만드냐”고 나무라더군요. 결국 하루 교통비 5000원씩 총 50만원만 받고 합의했습니다. 억울해서 보란 듯이 취업하겠다는 심정으로 이 악물고 공부해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그 상사와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네요. 그때 ‘먹튀’ 해줘서 고맙다고.

전예진/박신영/황정수/박한신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