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취임 석달 맞는 강성모 KAIST 총장 "KAIST 10대 핵심기술로 美 실리콘밸리서 벤처 키울 것"
만난사람 = 차병석 IT과학부장


“KAIST는 테라헤르츠 반도체와 휴머노이드 로봇 등 세계적인 혁신 기술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10개를 뽑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할 계획입니다. 미식축구에서 골라인을 향해 질주하는 엔드런(end run)처럼 글로벌 시장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엔드런 프로젝트’입니다.”

40여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해 지난 2월 말 KAIST 총장에 취임한 강성모 총장(68). 그동안 소통을 강조하며 내부를 다독이느라 대외활동을 자제했던 강 총장은 기자와 만나 자신이 직접 작명한 엔드런 프로젝트를 설명할 땐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이를 위해 실리콘밸리에 있는 KAIST사무소를 확대 개편해 벤처 창업자들의 펀딩을 지원하고 800여명의 동문 네트워크도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한인 최초의 미국 대학(UC머시드대) 총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취임 3개월째를 맞은 강 총장을 지난 15일 서울의 한 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났다.

강성모 KAIST 총장은 “대덕단지의 출연연구소들이 담을 낮추고 교류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벤처창업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강성모 KAIST 총장은 “대덕단지의 출연연구소들이 담을 낮추고 교류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벤처창업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오랜 기간 한국을 떠나 있었는데, 귀국해서 낯설지는 않았나요.

“오는 26일이면 총장에 취임한 지 꼭 석 달이 됩니다. 대학 4학년인 24세 때 한국을 떠났으니 영주하러 온 건 44년 만이네요. 그래도 매년 한두 번 한국에 왔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습니다. 처음 한국에 돌아간다고 할 때 아내가 조금 꺼렸는데, 이젠 나보다 더 학교 일에 관심을 갖고 한국 생활도 즐기고 있어요.”

▷귀국해서 KAIST 총장을 맡기로 결정했을 땐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KAIST가 지난 몇 년간 성장통을 겪지 않았습니까. (강 총장은 직전 서남표 총장이 학내 개혁을 추진하다 교수, 학생들과의 갈등을 빚어 중도 사퇴한 것 등을 성장통으로 표현했다.) 그걸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교수가 이끌고 학생이 중심이 되는 연구 대학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 연구소들과 함께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 문화를 만드는 것도 제 꿈이죠. 연구와 창업은 뿌리가 깊은 곳에서 좋은 것이 많이 나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소나기가 아니라 신선한 샘물처럼 연구와 창업이 지속적으로 솟아나게 하려면 교수와 학생들의 공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총장은 그저 훌륭한 과일 나무를 길러내는 정원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밖에서 바라보던 KAIST와 안에서 들여다본 KAIST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10년 전 미국 산타크루즈 공대 학장 시절 KAIST 전자과 교수들과 다양한 교류를 했습니다. 그땐 미국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훌륭한 대학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와보니 젊고 좋은 교수들이 많아 잠재력이 더 큰 곳이란 확신도 얻었죠. 하지만 개선할 점도 눈에 띄더군요. 한국 사회가 그렇듯이 벽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학과와 학과, 교수와 교수, 교수와 학생, 교수와 직원 간 벽을 트고 의견을 나눠야 잠재력을 더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총장 취임 3개월간 소통을 강조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KAIST 내부뿐아니라 외부에서도 성장통의 원인으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했습니다. 소통을 통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한 사람의 생각보다 우수하고 지속성도 가질 수 있죠. 전자공학을 전공하며 초집적회로를 연구했는데 손톱만한 칩도 인간 사회와 비슷합니다. 연구자들은 수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칩에 집어넣기 위해 소자 연구에 집중하지만 각 소자를 연결하는 라인이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연결선에 문제가 생기면 칩의 속도가 떨어지고 고장도 자주 일어나죠. 인간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소통)이 안 되면 일이 느려지고 실수도 많아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알면서도 잘 못하는 게 소통입니다. 무엇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까.

“대화를 할 때 눈을 마주보고 있으면 거짓말하기가 힘듭니다. 눈에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죠.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 마음과 마음으로 하는 게 진짜 소통입니다. 시간이 걸려도 이런 방식으로 신뢰를 쌓아야 공동의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습니다.”

▷전임 서남표 총장이 추진했던 개혁 조치를 어떻게 이어갈 생각인지요.

“서 전 총장이 교수 정년보장(테뉴어) 심사를 강화한 건 잘한 일입니다. 영어수업을 강화한 것도 맞는 방향이에요. 이런 조치는 계속 이어갈 겁니다. 다만 개혁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 게 아쉬운 점이죠.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적용하는 제도도 논란거리였습니다.


“현재 평점 3.0 미만은 돈(기성회비)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아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교수에게 애걸복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실 채점을 해보면 3.0과 2.9의 차이는 거의 없어요. 그걸 선으로 갈라서 돈을 내게 한 것은 합리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제도 때문에 KAIST 학생들이 학점 따기 쉬운 과목만 택해 공부하면 국가적으로도 손해 아닙니까. 그래서 기준점을 2.0으로 낮출 예정입니다. KAIST는 잔가지를 기를 게 아니라 도전적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정부가 주창하는 창조경제의 핵심 중 하나가 벤처창업입니다. KAIST 학생들의 창업은 활발한가요.

“그렇지 못합니다. KAIST 졸업생 중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은 1%도 안됩니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이 비율이 21%에 달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대학생 부모의 70%가 창업을 권장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학부모는 자식이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창업을 권하는 경우는 2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런 문화부터 바뀌어야 겠죠.”

▷KAIST를 주로 스탠퍼드대와 비교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KAIST의 롤모델을 스탠퍼드대로 잡고 있습니다. 스탠퍼드대는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캘리포니아공대(칼텍)보다 벤처창업 성공률이 높고, 벤처업계 지도자도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실리콘밸리가 있어 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도 보고 들으며 배우는 것이 많은 덕분이죠. KAIST와 출연연구소들이 모여 있는 대덕단지도 담을 낮추고 서로 교류하는 문화를 만들면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벤처창업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를 바꿀 복안으로 마련한 게 엔드런 프로젝트예요.”

▷엔드런 프로젝트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시킬 생각인가요.

“KAIST는 이미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테라헤르츠 반도체, 페타비트 통신, 휴머노이드 로봇, 우주물체 추적, 차세대 과학위성, 반도체 플라즈마, 플렉시블 일렉트로닉스, 이산화탄소 중립화 등 사업화에 가까이 다가간 10가지 기술을 이미 선정해 놓았어요. 이걸 벤처창업으로 연결시킬 도약연구를 집중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기술들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현지에서 펀딩을 받고 나스닥까지 올리는 게 최종 목표예요. KAIST 졸업생을 네트워크로 해 창업자를 지원하는 것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도전적인 인생을 살아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면 그렇죠. 제 할아버지는 1919년 4월 경성 독립본부에서 상하이 임시정부로 헌법원문을 가져간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어렸을 때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다른 집에 들어가 입주 가정교사를 했죠. 고교 1학년 때 고교 2학년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대입 수험표까지 받아놓고 친구와 도망가 군대에 가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군대를 미리 다녀온 게 전화위복이 돼 대학(연세대)에서 한 명에게 주는 유학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비전(Vision), 이노베이션(Innovation) 인내(Perseverance)를 의미하는 ‘VIP’가 좌우명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더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인내하면 좋은 결실을 거둔다는 뜻이죠. 어쨌든 할아버지처럼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찾아왔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정리=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 강성모 총장은 누구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한인 최초로 미국 UC머시드대 총장을 지낸 세계적 석학이다. 1946년 경기 양평군에서 독립운동가 강대현의 손자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1963년 경신고 졸업과 동시에 공군에 입대해 복무한 뒤 1966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4학년 때 단 200달러를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디킨슨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일리노이대 교수,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공대 학장 등을 지내며 전자회로 설계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UC머시드대 퇴임기념석 동판에는 ‘열정과 마음을 다해 뜻하는 바가 있으면 더욱 좋은 길이 열린다(Where there is a will with a heart, there is a better way)’라는 문구를 남겼다. 부인 강명아 씨(68)와는 1972년 미국에서 만나 결혼했고 1남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