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그룹 장손 구본웅의 '야심'…"실리콘밸리 기술로 亞 정복"
재계 14위, LS그룹의 장손이면 인생을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35·사진)는 생각이 달랐다.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외아들인 그는 2002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부, 경영대학원(MBA)을 다니며 ‘창조경제의 본거지’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면서 정보기술(IT) 혁신에 따라 휴렛팩커드 델 등 하드웨어 거인들이 퇴조하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소프트웨어 중심 회사가 급부상하는 것을 지켜봤다.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구 대표는 1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LS를 포함해 한국 대기업이 수십년 전 창업 당시의 벤처정신을 되찾지 않으면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에겐 실리콘밸리의 벤처 인맥이 있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기디언 유, GE의 벤처그룹을 만든 짐 킴, 실리콘밸리 파워그룹인 페이팔마피아(2002년 인터넷 결제회사 페이팔을 이베이에 15억달러를 받고 매각한 뒤 재투자에 나서 유튜브 링크트인 등 수많은 벤처를 키워낸 페이팔 창업자들)의 한 명인 조 론스데일 등과 알고 지내던 구 대표는 그들에게 제안을 했다.

“실리콘밸리에 있어 보니 이곳 창업자들은 아시아 진출을 원하고, 아시아 기업들은 여기 기술을 원하는데 이들을 이어주는 곳이 없다. 우리가 그런 플랫폼(사업 기반)을 함께 만들자.

구본웅 대표(오른쪽부터)와 조 론스데일, 짐 킴 파트너가 지난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개소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포메이션8 제공
구본웅 대표(오른쪽부터)와 조 론스데일, 짐 킴 파트너가 지난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의 샌프란시스코 사무실 개소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포메이션8 제공

“한국 대기업 도약·침체 갈림길 벤처와 손잡아야 살아 남는다”

이들은 2011년 서울에 모여 ‘도원결의’를 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를 발굴해 한국에 이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시장을 정복하자는 구상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펀드가 ‘포메이션8’이다. 구 대표의 부친인 구자홍 회장을 비롯해 제임스 장(소프트뱅크 차이나펀드 파트너), 톰 바루치(실리콘밸리 최고의 클린테크놀로지 전문 벤처캐피털 CMEA펀드 창업자로 미국 상무부 고문) 등도 합류, ‘6명의 파트너와 2명의 고문이 힘을 합쳤다’는 뜻으로 펀드 이름을 지었다.

야후·페이팔 창업자 등 참여…4억弗 목표액 훌쩍 뛰어넘어

작년 4월 펀드 조성을 시작해 모금이 지난달 끝났다. 목표액(4억달러)을 넘어 4억4800만달러가 모였다. 제리 양 야후 창업자와 피터 티엘 페이팔 창업자,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펀딩에 참여했고 미국·한국·중국·싱가포르 기업과 투자기관, 글로벌 헤지펀드에서도 돈을 댔다. NBC와 블룸버그가 이를 보도했고, 포천지는 5월호에서 ‘돈과 네트워크가 있는 가장 뜨거운 벤처캐피털’이라고 소개했다.

구 대표는 “지금은 한국 대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느냐, 일본 기업처럼 되느냐 하는 중요한 때”라고 단언했다. “수십년 전 한국의 창업자들이 벤처정신을 갖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파트너십,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소프트웨어,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구 대표는 “다시 벤처정신으로 돌아가 선진기업 따라잡기에만 익숙한 기업문화를 바꾸고 벤처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포메이션8은 한국에 실리콘밸리의 벤처정신을 이식할 계획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의적 신기술에 투자한 뒤 한국에 사업 기반을 만들고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을 정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실리콘밸리의 팰러앨토 외에 샌프란시스코, 서울, 싱가포르, 상하이에 사무소를 세웠다.

그는 한국의 벤처 문화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인 창업자들이 실력은 뛰어난데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앱이나 게임으로만 몰리는 경향이 있다”며 “틀 밖으로 나오는 게 혁신인데, 사업을 하다 보면 점점 틀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구 대표는 이를 △좁은 한국 시장 △근시안적인 벤처캐피털 △잘못된 정부 정책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본다. 하나의 예로 정부가 출자한 모태펀드의 투자를 받은 벤처는 해외에 법인을 세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구 대표는 한국의 운명이 벤처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한국 벤처인들이 틀 밖의 혁신적 구상을 이뤄낼 수 있도록 초기 벤처에 투자, 글로벌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펀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을 맺었다.

구본웅 포메이션8 대표는 고교 졸업후 입대 … 美대학 재학중 6번 창업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외아들이다. 미국 이름은 브라이언 구.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입대, 충북 옥천에서 군생활을 했다.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 경제학부와 경영대학원(MBA)을 다녔다. 학부 4년간 6개 스타트업(신생기업)을 만들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09년 졸업한 뒤 대학 동기 3명과 4000만달러 규모의 하버퍼시픽캐피털 펀드를 만들어 운영했다.

창업에 유리한 이공계 전공을 택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여덟 살, 여섯 살 두 아들에게 소프트웨어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