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맥가이버와 정주영의 공통점은? 융합형 인재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의 비밀요원은 총을 휴대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 위기에 빠지면 화학 물리학 지질학 등 과학적 사고와 자신이 지닌 도구를 총동원해 벗어났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과 즉흥적 대처 능력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맥가이버보다 더 야성적 사고로 실천한 인물이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때 그는 가능성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극비리에 방문했을 때, 유엔군 묘지를 참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묘역은 조성 중이라 황량했다. 미8군 사령부는 그 묘역을 푸른 잔디정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10만명의 미군 병사 숙소를 1주일 만에 만들었던 정주영 당시 사장에게 부탁했다.

정 사장이 물었다. “대통령이 지나가시면서 보실 때 풀만 파랗게 나 있으면 됩니까?” “그렇다”는 답변을 들은 그는 공사비의 3배를 받는 조건으로 승낙했다. 그는 낙동강변에서 막 싹을 내민 푸른 보리를 통째로 사서 유엔군 묘지에 옮겨 심었다. 황량하던 유엔군 묘지는 잔디처럼 보이는 푸른 보리로 뒤덮였다. 정 사장은 “묘역을 푸르게 입히는 것이 중요하지, 잔디가 핵심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사고를 깨부순 정 사장의 도전정신과 역발상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브리꼴레르’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처음 언급한 브리꼴레르라는 개념은 일차적으로 ‘손재주꾼’으로 번역되며, 삶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다양한 기존 지식을 융합해 이제까지 없던 제3의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인재를 일컫는다.

《브리꼴레르》는 낯선 세계와 끊임없이 접속해 묘안을 찾아내는 인재들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탐색한다. 날로 복잡해지고 있는 세상에서는 전문가의 틀에 갖힌 사고로는 금세 한계에 부닥칠 것이며 빠른 상황 판단과 과감한 추진력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가 절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브리꼴레르가 되기 위해 독자들이 일상에서 추구해야 할 다양한 방법과 습관도 제시한다.

△우선 상식에 시비를 걸어 몰상식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 정상에 오른 사람 치고 평소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관계 없는 것을 관계 있는 것으로 엮고 뒤섞으며 창조를 즐기라. △머릿속에서만 고민하지만 말고 고통을 감수하면서 체험하라.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룰 팔로어보다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룰 메이커가 되라.

보다 구체적인 습관도 제안한다. △15분 이상 한가지 일에 몰입해 보자. 끈기와 인내심이 일을 성취하는 밑거름이다. △낯선 분야, 편하지 않은 사람과 일부러 접촉하라.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몸과 정신은 늪에 빠진다. △계획하지 않고 왠지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무작정 여행하라. 기대하지 못한 깨달음이 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추진하려는 근성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유 없이 빈둥거리는 시간도 많아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새롭게 떠오른다. 버트런드 러셀은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