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0년, 돈·청년 떠나고 숫자만 '최대'
국내 벤처기업 수가 사상 최대인 3만개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지만 주식시장에 상장된 벤처기업 수는 오히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창업투자회사(창투사)의 벤처 투자액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늘어나는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청년 기업가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최근 추세다.

28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8193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2000여개 늘었다. 벤처 창업 열풍이 절정이던 2000년 1만1000개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하지만 벤처기업 중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회사의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 2002년 4.28%였던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 비중은 2006년 3.19%로 떨어졌고 2008년에는 1.74%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이 비율은 1.12%로 감소했다.

창투사들의 투자 자금도 감소하는 추세다. 2002년 1조4129억원에 달했던 창투사들의 투자금(잔액 기준)은 지난해 말 4447억원으로 급감했다. 10년 만에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창투사들의 신규 투자 역시 같은 기간 1570억원에서 380억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엔젤 투자는 더 심각하다. 2000년 국내 엔젤투자자들은 5493억원을 1291개 기업에 투자했다. 벤처 거품이 꺼지고 난 뒤인 2003년에도 엔젤 투자 자금은 3031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2006년 971억원으로 급감했고 2011년에는 296억원에 그쳤다. 2011년 엔젤투자자들이 투자한 회사는 고작 39개였다. 엔젤 투자금은 11년 만에 20분의 1로 줄었고, 투자 회사 수는 당시에 비해 3%로 쪼그라들었다.

창업에 도전하는 대학생이 많다지만 전체 벤처기업 CEO 중 20~30대 청년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2001년 56.1%로 절반을 넘었던 청년 CEO 비중은 2004년 48.4%, 2006년 22.9%, 2011년 18.5%로 떨어졌다.

요컨대 정부가 인증한 ‘무늬만 벤처기업’만 늘어날 뿐 내실 있는 벤처기업은 줄고, 청년 창업과 벤처 투자도 저조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창업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투자자들은 투자할 만한 회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벤처기업들은 투자받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실한 벤처 생태계에서는 창조경제 정책이 또 다른 벤처 거품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임원기/김병근/오동혁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