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6일 17:13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직장의 신(神)'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간장회사 Y장에서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삶을 현실감있게 그려내면서 공감을 얻고 있다. 주인공은 배우 오지호씨가 분한 32세 장규직 씨. 장 씨는 성공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계약직과 같은 회사내 '약자'를 무시하기 일쑤다. 반면 장 씨와 동기인 무정한 씨(이희준 분)는 경쟁보다 협동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스스로 나서기보다는 후배들을 챙긴다. 그렇다면 둘 중 회사에서 더 인정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장 씨다. 장 씨는 무 씨보다 연봉을 1000만원 넘게 더 받는다. 상사인 황갑득 부장(김응수 분) 역시 장 씨를 편애해 마케팅영업부 팀장에 앉힌다. 무 씨는 마케팅영업지원부로 밀려난다.

인수합병(M&A) 업계에도 '잘 나가는' 투자은행(IB)이 있다. 바로 골드만삭스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코웨이 매각자문, 하이마트 롯데측 인수자문을 맡으면서 바이아웃(경영권 매각) 딜 기준으로 리그테이블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핫딜' 중 하나로 꼽히는 동양매직 매각자문을 맡았다.

동양그룹이 동양매직을 매물로 내놨을때 시장에선 국내에서 인수할 만한 투자자가 나오겠냐는 회의적 시각이 존재했다. 동양매직 몸 값에 대한 시장 평가는 1700억~2300억원 수준인데, 동양에서 기대하는 값은 3000억~50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동양그룹이 동양매직 매각주관사로 그룹 계열증권사인 동양증권과 함께 골드만삭스를 선정하면서부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가 이곳저곳에서 인수후보자를 물고 올것이라는 예상이 퍼졌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동양매직 예비입찰에 12~13곳의 인수 후보자들이 뛰어들었다. 지난해 코웨이 인수전에서 혜성과 같이 등장안 중국 캉자를 비롯해 일본과 유럽 가전업체들을 끌어들였다.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를 파트너로 선정하면서 흥행을 위한 '간판'이 필요했다던 동양증권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렇게 비싼 값에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어?'라며 뒷짐지던 인수 후보들은 몸이 달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양매직 유력 인수 후보자인 현대백화점은 골드만삭스에 '협박' 아닌 '협박'까지 가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코웨이 매각때와 같이 가격을 높이기 위해 '꼼수'를 부릴 경우 앞으로 현대에서 나오는 딜에는 발도 붙이지 못할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놨다는 것.

코웨이 매각당시 웅진그룹과 골드만삭스는 인수 후보를 4번이나 바꿨다. 또 예비입찰에서 롯데GS보다 상대적 약자인 교원그룹에 대해선 숏리스트(예비인수후보)에서 뺐다가 뒤늦게 본입찰에 참여시키는 등 이례적인 행동을 하면서 빈축을 샀다. 그리고 골드만삭스는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이후 사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우리투자증권보다 스무배가 넘는 매각자문 수수료를 챙겼다.

이렇다보니 국내외 IB들은 현대백화점이 골드만삭스에 일침을 가해준 것에 대해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고객에겐 최상의 파트너일지 몰라도 경쟁 IB들이나 M&A 후보자들에겐 얄미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M&A에서 진성인지 가성인지 확인도 안되는 해외 후보군들을 끌어들여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면 최종 인수자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 십상이다. 역정보, 거짓정보 등으로 혼탁해지면 진정성 있는 투자자들이 발을 빼면서 팔릴만한 매물이 팔리지 않고 시간만 허비해 부실해지는 경우도 있다. 돈이 오가는 비정한 M&A 시장에서 '페어플레이'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동양매직 M&A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던 사모펀드(PEF) 관계자에게 "다음 물건의 매각주관사는 어디로 쓸 거냐"고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바로 "골드만삭스"란다.

그렇다. 이것이 현실이다. '직장의 신'에서 직장동료들이 아무리 장규직 씨를 시기해도 장 씨는 이겼고 무정한 씨는 졌다. 아, '직장의 신'에 나오는 또 한명의 주인공을 빼먹었다. 3개월 비정규직 미스김. 그녀는 1인3역을 해내는 능력자다. '칼퇴근'에 시간외근무수당을 받아야 회식에 참여할 정도로 개인주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료가 곤경에 빠지면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건 바로 미스김이다. M&A시장에서 미스김과 같이 '상생의 미'를 실천하는 IB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